/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자서전/17/생약제제에 눈을 돌리다

2015.04.22 07:59:40

일본은 양약의 기술을 진보시키는 한편으로 한약재에 대한 분석연구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일찍부터 생약제제를 시중에 판매하고 있던 생약선진국이었다. 따라서 한방에 일찍 눈을 떴던 중국과 한국보다 훨씬 과학적인 생약연구가 진행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한다면 생약제제 개발에 도전해 볼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성수동 공장을 건설하는 한편으로, 나는 향후 사업계획에 대해 여러 방안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외국과의 기술제휴를 모색하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였고, 우리 회사의 기업특성에 맞는 약품을 선정하는 일도 또 다른 고민거리였다.


특히 보령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갈 첫 약품을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가 중요한 일이었다. 첫 작품을 통해 확실하게 기업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장차 면면히 이어질 보령 역사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을 게 아닌가.
물론 당시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비타민류나 항생제 계통의 신약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안이었지만 사실 선발업체들에 비해 기술이나 경험이 부족했던 우리로서는 다소 무리한 욕심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특성 있는 제품의 연구나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할 계제도 되지 못했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생각이 미친 것이 바로 생약제제(生藥製劑)였다. 장기적 연구와 그에 따른 막대한 투자력이 필요한 신약개발이 여러모로 무리수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데 비해 생약제제는 입장이 달랐다. 한약재가 풍부한 국내 상황으로 볼 때 생약제제는 우선 원료공급이 유리하다는 잇점이 있었다. 또 양약에 대한 관심과 소비도가 높고 그 약효가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한약재를 선호하는 국민정서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성수동공장이 준공된 후 생산라인 장면.


특히 당시만 해도 한약재는 약종상이나 한약방 등에서 첩약으로 팔리고 있을 뿐 양약처럼 상품화 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를 양약처럼 제제화(製劑化)시킨다면 시장성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한약을 원료로 한 생약제제의 효시는 1897년 동화약방(同和藥房)이 소화기관용으로 발매한 ‘인소환’(引蘇丸)이었는데, 이 약도 완전생약제제가 아니라 양약과 한약재를 배합한 형태였다.


그나마 그 이후 오래도록 내로라 할만한 생약제제 약품은 개발된 것이 없었다. 이는 해방 이후 밀물처럼 밀려오던 양약에 의해 한약재 자체의 명성이 가려지게 된 데도 원인이 있었다.
고래(古來)로 수 천년 동안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된 한약재, 그러나 도입된 지 불과 반세기도 안 된


양약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난 한약재.
하지만 우리 고유의 한약재에는 우리 체질에 맞는 탁월한 효능이 숨어있음이 분명했고, 따라서 때로 그 효과가 과장되게 인식되기도 하는 양약에 비해 오히려 남다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을 터였다. 그 진가를 발휘해서 제약업에 활용해보자는 게 바로 나의 포부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내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본격적인 제품 구상에 앞서 생약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임상 연구결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더니 의외로 그 방면의 자료가 태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방 후에 급속하게 밀려온 양약 탓에 한방에 대한 연구는 이미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생약에 대한 관심 자체가 온전히 사그라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소홀했던 것이다.
고심 끝에 나는 일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생약에 관한한 동양권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와 개발을 진행해 온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던 까닭이다.


일본은 양약의 기술을 진보시키는 한편으로 한약재에 대한 분석연구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일찍부터 생약제제를 시중에 판매하고 있던 생약선진국이었다. 따라서 한방에 일찍 눈을 떴던 중국과 한국보다 훨씬 과학적인 생약연구가 진행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한다면 생약제제 개발에 도전해 볼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과 한국은 정식으로 일반 무역거래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나마 명목에 그치고 있었을 뿐, 실무상의 접촉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기술도입에 관한 상담창구를 찾거나 기술도입선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를 모색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일본측의 생약 연구가 활발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보고서나 문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우리의 한계였다. 그러다 보니 일본 현지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 쪽의 연구수준과 개발동향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정도의 귀동냥으로는 도저히 약품개발에 적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성수동 허허벌판에 박은 공장 기둥처럼 새로운 생약제제 제품개발에 대한 내 원칙은 확고했지만, 그 원칙을 실현하려는 내 의지는 처음부터 암초에 부딪히고 있었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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