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보령제약 그룹 회장 자서전/18/생약제제에 대한 집념, 그리고 ‘용각산’

2015.04.27 07:33:25

아무리 여건이 좋지 않다고 해도 생약제제에 대한 집념을 떨칠 수는 없었고, 그 가장 적절한 제품이라고 판단되는 용각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용각산이야말로 생약제제에 대한 내 꿈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고,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된 이상 발걸음을 재촉해서 그 기회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나는 귀중한 정보를 한 가지 얻게 되었다. 그것은 그 동안 비공식 루트를 통해 이따금 국내로 들어오다가 최근 수출입창구를 통해 소량 반입되고 있다는 어느 일본 약품에 관한 것이었다. 바로 ‘용각산’(龍角散)이라는 이름의 생약제품이었다.

용각산에 대해서는 나도 들은 바가 있었다. 용각산은 이미 일제시대에 국내에 들어와 널리 소개된 생약으로 가래와 기침, 특히 해소천식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던 약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그 인기가 대단해 ‘주식회사 용각산’이 이 약품 하나로 굴지의 제약회사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요컨대 용각산은 120년 역사를 지닌 생약이자 일본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진 진해거담제였다.
그러나 내가 이 약품에 관한 정보에 귀가 솔깃해진 것은 비단 일본 내에서의 명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외국에서 ‘잘 나가는’ 인기 약품을 그대로 들여와서 그 명성을 등에 업고 히트를 쳐보자는 생각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용각산이 다름 아닌 생약제제로 개발되어 성공한 약품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구상하고 있는 약품 개발 방안이 이미 시현(示現)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면 나로서는 그 자체가 관심사이자 연구 대상이었던 것이다.


김승호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기술제휴 계약체결을 위해 방문한 일본 용각산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용각산에 관한 정보를 처음 가져온 사람은 황덕진(黃德鎭)이라는 사원이었다. 일찍이 일본에서 태어나 일어에 능통했던 그는 입사 전에 해외의 각종 약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등 약업계와도 많은 관련을 맺고 있다 1965년에 입사한 직원으로 사내에서는 몇 안되는 일본통이었다.

용각산에 대한 황덕진의 정보는 우선 용각산이 해방 전에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제품이었는데 일본으로부터 공급받을 길이 없어지자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잊혀져왔던 제품이라는 사실이었다. 또 그동안 일본을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그 효력을 아는 사람들이 소량으로 들여와 사용하고 있을 뿐이며, 일부 밀수로 들어와 시중에 거래되고 있는 제품의 경우 그 인기가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기술제휴를 통해 국내생산에 성공한다면 암거래를 없애는 동시에 국내의 잠재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이런 황덕진의 의견 제시는 그동안 생약제제의 개발문제와 일본측 관련 기술 도입 문제로 고심해왔던 내게 새로운 활로를 터 준 것이었다.

특히 경제부흥에 역점을 두면서 공해문제가 서서히 대두되는 동시에 기관지 계통의 질병이 늘어나고 있던 당시 국내 상황으로 봐서 도 용각산은 시기적으로 적절한 약품이었다.
그러나 정작 기술제휴에 있어서는 신중한 태도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측과의 접촉창구가 열려있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더욱이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이라는 사실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문제였다.



용각산 생산의 주역들.(맨 왼쪽에 서있는 사람이 황덕진 사원, 다음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김승호 회장)


당시는 ‘일본’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때였으므로 제 아무리 좋은 약을 들여온다는 명분이 있다 해도 결코 국민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나로서는 일본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장차 두고두고 기업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점도 걱정거리였다.

또 다른 근원적인 문제는 과연 용각산 같은 일본 유수의 제약회사가 이제 갓 출발한 한국의 보령제약 같은 신생회사와 기술제휴를 해 주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보령제약은 기술이나 규모,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안심하고 기술을 넘길 수 있을 만한

믿음직한 파트너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볼 때도 그것은 결코 무리한 생각은 아니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데다 당시 일본 내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약회사의 하나인 용각산인데, 어찌 허술한 파트너와 기술제휴를 하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여건이 좋지 않다고 해도 생약제제에 대한 집념을 떨칠 수는 없었고, 그 가장 적절한 제품이라고 판단되는 용각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용각산이야말로 생약제제에 대한 내 꿈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고,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된 이상 발걸음을 재촉해서 그 기회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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