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자서전/20/길고 긴 인내의 여정 끝에 이룬 용각산과의 만남

2015.05.04 07:35:31

용각산과의 만남은 실로 인내가 필요한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그것은 기술제휴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결과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바로 인내가 주는, 그 끈질긴 수고로움이 주는 결실과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6년 6월 22일, 주식회사 용각산의 부사장 스기야마(杉山)와 기획관리실장 이께다(池田)가 드디어 보령제약을 방문했다. 보령으로서는 그들이 실로 반갑고도 귀한 손님이었지만 기술제휴 경험이나 관련 전문지식이 별로 없는 우리로서는 당장 상담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본인 특유의 성품답게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갈수록 세세한 부분까지 까다롭게 나오는 바람에 상담은 쉽게 진척이 되지 않았다.


부사장도 부사장이려니와 특히 이께다 기획관리실장은 매사에 정확하고 빈틈없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본 내에서 그는 ‘키신저’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키신저 같다’라는 말이 매사에 빈틈이 없고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께다는 걸핏하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복안이나 자료를 요구하는가 하면 향후 기술제휴의 초안이 될 문구 하나 하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감밖에 없던 나로서는 때때로 그들의 태도가 당황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고, 특히 내 자신의 신념을 내비치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그 과정의 하나로 나는 용각산의 중역들을 성수동 공장 터로 데려가 우리의 의지를 눈으로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당시 성수동 공장은 착공도 되지 못한 채 그저 부지만을 닦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저 곳에 들어설 우리 공장은 결코 건설자금이나 자재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남다른 성실과 노력의 결과로 저곳에 기둥을 박고 지붕을 얹힐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비록 우리 보령제약이 최고의 제약회사는 아니지만 앞으로 저 곳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최고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때부터 용각산의 중역들은 차츰 보령제약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듯 했다. 구멍가게 수준의 작은 약국에서 출발하여 단기간 내에 외국과 기술제휴를 시도하는 단계까지 오른 것이 바로 남다른 신뢰감의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김승호 회장(왼쪽)이 일본 용각산을 방문,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한 후 후지이 야스오 사장에게 기념패를 전달하고

있다.


1966년 12월, 나는 드디어 주식회사 용각산 후지이 야스오(藤井康男)사장의 초청으로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그리고 일주일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마침내 주식회사 용각산과의 기술제휴 게약을 체결했다. 지난 2년 이상을 끈질기게도 설득한 인내의 결과였다.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 나는 곧바로 귀국길에 오르지 않고 일본 내 제약회사들의 의약품 생산시설을 둘러보았다. 축적된 기술과 앞선 설비, 그리고 생산 공정이나 영업정책에 이르기까지 나로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특히 그들의 신제품 개발의욕과 이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는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산더미처럼 쌓여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여러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오랜 노력 끝에 계약을 성사시킨 일에 관한 흥분된 마음이라기보다 오히려 앞으로 나와 보령이 헤쳐나가야 할 산적한 일들에 관한 새로운 고민의 시작이었다.


비행기 좌석에 몸을 기댄 나는 목 뒤에다 승객용 베개를 베면서 문득 침향목(枕香木)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다. 침향목은 향나무를 베어 물 속에 넣었다가 꺼낸 것을 말하는데, 향기가 좋고 병충해 방지에도 효과가 뛰어나 예로부터 귀하게 여기던 물건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침향목 만들던 풍습이 차차 사라져버렸는데,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적어도 백년 이상은 깊은 물에 넣어 두어야 하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질긴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용각산과의 만남은 실로 인내가 필요한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그것은 기술제휴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결과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바로 인내가 주는, 그 끈질긴 수고로움이 주는 결실과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침향목 만들던 선조들의 인내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나는 보령제약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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