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보령제약그룹회장 자서전/39/항생물질의 성공과 기술수출

2016.03.21 07:32:41

사람에게 있어서 자질은 물론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자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의욕과 노력이 아닐까. 인간의 내면에 불타는 의욕과 줄기찬 노력은 그 어떤 장애도 극복시키고 마는 엄청난 힘을 가진다.
나는 당시 항생물질 합성 성공이나 기술 수출이 우리 사원들의 자질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스스로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몰두한 의욕과 노력이 바로 우리의 성공요인이자 가장 큰 힘이었다.


항생제 개발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리스톨사의 신제품 항생제를 발매하게 된 것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항생물질 합성에 성공을 거두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주었다. 우리의 연구진은 그동안 원료 의약품의 합성과 항생제 개발에 역점을 둔 연구개발사업을 꾸준히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브리스톨의 우수한 항생제들을 도입 발매하면서 이 같은 연구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었다.


당시 원료의약품의 개발은 1977년부터 시작된 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포함되어있던 사항이었고,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지원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은 원료 의약품의 생산은 물론 의약품 생산에 기초적으로 필요한 원료의 합성에 주력하게 되었는데, 그 주된 목적은 관련기술을 축적하고 약품의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유통시장의 구조적 특이성으로 인해 비록 완제품 품목허가로 확고한 시장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원료의 공급원이 봉쇄되면 자연적으로 시장마저 붕괴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은 원료의약품생산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업계의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는 원료 의약품 합성연구에 더욱 매진 할 것을 연구원들에게 독려했다. 세계유수의 업체들과 잇달아 기술제휴를 맺으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 같은 연구 활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첫 결실이 맺어진 것이 1978년 3월의 엠피실린 합성공장 준공과 더불어 독자적으로 항생물질의 합성에 성공한 것이다.


첫 합성에 이르기까지 우리 연구진들이 보인 노력과 열성은 실로 대단했다. 초기엔 100리터 초자반응부 1기만 덩그러니 놓여있어 연구시설이라고 하기조차 무색할 정도였고, 그나마 1976년 하반기에 들어서야 200리터 반응부를 비롯해서 연질 캅셀 충진기 등의 설비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이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관련 직원들이 겪은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때 연질 캅셀 충진기를 시험 가동하다가 담당부장과 사원이 감전사고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전 부서원이 밤낮없이 노력한 끝에 마침내 1978년 2월에 첫 합성에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앰피실린 공장이 세워진 후 안양공장은 하루에 18kg을 생산했는데 그것도 새벽 두시, 세시까지 연장 조업을 해야 가능했다. 초기의 기술이 아직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사원들의 열정은 사장인 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누가 강제로 시키는 것도 아닌데 너나없이 밤새 일을 하다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5시에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들의 사명감과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안양공장의 앰피실린 생산실적은 급속히 향상되어가고 있었다. 이 때의 합성부는 1982년 중앙연구소가 발족되면서 그 곳과 합병되었다.
항생물질 합성성공으로 치료의약품 제조업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한 보령제약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국내제약업체로서는 처음으로 합성기술을 역(逆)수출하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1979년 8월, 멕시코의 휄신사사와 앰피실린, 아목시실린, 세파렉신 등 치료도가 높은 항생물질의 합성기술을 수출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김승호 회장(가운데)이 멕시코 '휄신사'사와 합성기술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휄신사사는 원료의약품만 합성하는 회사로 유명했으며, 멕시코에서는 70%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막강한 회사였다. 이 회사가 하루 생산하는 앰피실린의 양만도 450kg에 달해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명실 공히 중남미 제1의 원료생산메이커였다.
이처럼 합성만 전문으로 세계적인 유수의 제약회사가 합성연구실적이 불과 몇 년에 불과한 우리의 합성기술을 도입했다는 것은 실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기술능력이 그만큼 대외적인 신뢰를 얻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었다.


기술제공 계약에 따라 당시 안양공장의 이용의(李瑢儀)합성부장을 비롯한 3명의 기술진이 멕시코 현지로 파견되었다. 기술 지도를 해 주기 위해 우리직원을 외국으로 내보내는 일은 물론 이 때가 처음이었다. 따라서 나는 출국하는 이들 3명의 직원에게 “항상 자신감과 성실함을 가지고 기술지도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처음 기술수출의 길에 나섰던 세 사람은 내가 기대했던 대로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귀국했다. 그들은 난생 처음 남미(南美)행 비행기에 오를 때의 그 걱정스러운 눈빛을 떨쳐버리고 “조금만 노력한다면 우리의 기술도 선진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달라진 것이 비단 그들 세 사람만은 아니었다. 항생물질 합성성공과 기술수출과정을 통해 보령가족들은 실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곧 스스로 보령의 한 구성원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소속감과 자부심으로 이어졌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때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자 보람이었다.
당시 우리가 남다른 자신감을 가지고 80년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요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유독 우리 보령제약의 사원들이 하나같이 남다른 자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질은 물론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자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의욕과 노력이 아닐까. 인간의 내면에 불타는 의욕과 줄기찬 노력은 그 어떤 장애도 극복시키고 마는 엄청난 힘을 가진다.
나는 당시 항생물질 합성 성공이나 기술 수출이 우리 사원들의 자질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스스로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몰두한 의욕과 노력이 바로 우리의 성공요인이자 가장 큰 힘이었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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