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자서전/40/폐허로 변한 안양공장

2016.03.28 07:23:41

수해를 당한 첫날 아침, 용각산이며 구심 등의 제품들이 물에 둥둥 떠내려가자 사원들은 옷을 입은 채 가슴까지 차는 물속으로 들어가 플라스틱 바구니에 제품을 주워 담았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결연한 의지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내 스스로에게 굳은 다짐을 하였다.


1977년 7월 8일, 안양공장이 신축된지 3년째가 되면서 성장가도를달리고 있던 우리는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게 된다. 30년만에 처음이라는 집중폭우로 인해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비는 그 전날 저녁부터 집중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경기지방을 강타한 폭우는 안양공장이 위치한 안양시와 시흥군 일대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저녁 8시 무렵에 안양 시내는 이미 무릎까지 물이 차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내린 비는 420mm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이 집중호우로 특히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바로 수원과 안양, 시흥일대였다.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1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재민만도 8만여명에 이르렀다. 수원과 인천 사이의 철도는 두절되었으며, 농경지는 마치 바다처럼 변해버렸다.
7일 저녁 호우가 내리기 시작했을 무렵 안양공장에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당직 근무자들만이 공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장 앞을 흐르고 있는 호계천이 범람하더니 삽시간에 공장을 덮쳐버렸다. 당직근무자들이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흙탕물은 지하층을 완전히 삼켜버렸고, 각종 시설과 생산제품들은 고스란히 물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집중폭우로 인해 안양공장 앞 아스팔트는 오간 데 없이 진흙 벌로 덮여 있었고 축구 골대엔 물에 휩쓸려 온 잡초며 나무토막, 비닐봉지 등이 엉켜 붙어 있었다. 한마디로 처참함 그 자체였다.


밤새 내린 비는 8일 아침이 되어서야 그치기 시작했다. 공장과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던 직원들이 새벽같이 나와 보았지만 흙탕물로 뒤덮인 공장을 망연자실 바라볼 뿐 당장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있는 피해가 아니었다.
사전에 시설이나 제품을 전혀 대피시키지 못했던 것은 누구를 탓할 일도, 탓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만큼 비는 한밤중 사이에 기습적으로 억수같이 쏟아진 것이다.


차츰 물이 빠지면서 수난(水難)을 당한 공장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직원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공장 앞 아스팔트는 오간 데 없이 진흙 벌로 덮여 있었고 담장은 철책까지 모두 무너져 황량하기 짝이 없었으며, 축구 골대엔 물에 휩쓸려 온 잡초며 나무토막, 비닐봉지 등이 엉켜 붙어 있었다. 한마디로 처참함 그 자체였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겔포스 생산라인이 자리 잡고 있던 지하층이었다. 값비싼 생산시설과 제품들은 천정까지 휩쓸고 간 흙탕물로 인해 이미 크게 손상되었거나 진흙으로 뒤덮여져 있었다. 겔포스 생산라인은 물론 네오메디코프 생산라인을 비롯한 전 생산라인이 완전 침수되어 진흙투성이가 된 채 겨우 윗부분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지하창고에 산적해 있던 약품과 원료, 그리고 부자재들도 이미 유실되었거나 못쓰게 되어버렸다. 지하에 차 있던 흙탕물이 밖으로 빠져나올 때 약품이며 부자재들이 휩쓸려 나와 운동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기도 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포장지며 집기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날이 새자마자 공장으로 달려온 나는 수해의 처참한 현장 앞에서 말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온갖 땀과 노력으로 일구어낸 결실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추스렸다. 그나마 인명피해가 없었고, 공장건물이 신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붕괴의 우려가 없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수해를 당한 첫날 아침, 용각산이며 구심 등의 제품들이 물에 둥둥 떠내려가자 사원들은 옷을 입은 채 가슴까지 차는 물속으로 들어가 플라스틱 바구니에 제품을 주워 담았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결연한 의지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내 스스로에게 굳은 다짐을 하였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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