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총장 자서전/29/육영의 첫걸음을 내디디며

2011.12.14 14:51:14

대전과 충남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춘 중학교로 평가받아

 

예순의 나이에 나는 대학 설립이라는 큰 일을 벌였다. 그에 앞서 고향 양촌에 건양중고교를 세웠고 10년여 만에 건양대를 개교하여 논산에 고등 교육기관이 들어서는 데 일조했다. 


나의 육영사업의 발로는 애향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만일 일찍부터 육영사업에 매달렸더라면 교육적 입지가 좋은 곳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고향의 중학교가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1978년 늦가을 뜻밖에 양촌에서 면장님을 비롯 유지 몇 분이 김안과병원을 찾아오셨다. 용건은 면 소재의 중학교 운영이 아주 어렵다며 인수할 의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육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었지만 뜻밖의 요청이라 일단 보류하고 여비를 드리며 내려가시도록 했다. 한 달쯤 뒤에 그분들이 다시 상경하셔서 “김 박사밖에는 맡을 사람이 없으니 고향의 발전과 후학을 위해 맡아 달라”고 간청하셨다. 며칠간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말씀 드린 뒤 현지의 중학을 방문하여 주위의 여론과 현직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학교 시설을 돌아보니 4천여 평의 부지에 철 구조물로 된 2층 교사 1동, 토담으로 된 건물 외엔 이렇다 할 시설이 없고 교실 안에는 낡은 나무 책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향 유지들의 거듭된 권고에 따라 인수하기로 결심하고 사무장인 이종선 씨를 인수 책임자로 내정했다. 학교 법인은 매매 계약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법인과 학교 부채를 갚아주는 조건으로 인수가 가능했다.


 이 학교는 1970년 학교법인 인수학원으로 출발, 양촌 지역의 청소년 교육을 맡아왔지만 부채가 늘어나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웠다. 인수를 하려면 당시 1억 5천만 원 정도가 필요했는데, 결국 1억 2천만 원을 갚아주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막상 학교를 인수하고 보니 당시 위치의 건물 상태로는 도저히 교육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전 방법을 모색했다. 학교 부지로 여러 군데가 검토된 가운데 봉소(蜂巢)골이라 불리는 지금의 자리를 선택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이 부지는 아무 쓸모없는 하천 부지여서 학교를 지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유명을 달리하신 나의 사백과 심석학원 이사장이 학교 부지로는 둘도 없는 ‘명당터’라고 충고해 주었다.

 

김희수총장(왼쪽에서 다섯번째)이 양촌중학교 공사장 앞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금의 위치로 이전을 계획하고 1980년부터 총 1만 3천 평의 대지에 공사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본관과 운동장을 완공하였다. 신축공사를 하는 데도 큰 교량을 새로 놓고 도로를 신설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는데 오랜 친우인 정석모(鄭石謨) 의원이 적극 도와줘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정 의원은 이 일 외에도 대학 설립인가의 산파역을 해 주었고, 관촉사에서 건양대 앞을 통과하는 도로를 국비 조달로 해결해 주는 등,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몇 년 전 타계했지만 정 의원에 대한 고마움은 늘 잊을 수 없다.


학교를 신축하면서 마치 내가 살 집을 짓듯이 정성을 다 쏟았다. 시설이 좋다는 학교, 잘 가꿨다는 정원이 있으면 달려가 직접 품으로 재보고 손끝으로 하나하나 만져보고 와서 공사에 반영했다. 예사로운 물 웅덩이도 그냥 없애지 않고 연못으로 만들고, 나무 한 그루 심는 데도 위치와 방향을 꼼꼼히 따졌다.


그리고 문화 혜택이 적은 곳인 만큼, 도시보다 오히려 더 좋은 시설을 갖추어주고 싶었다. 각 교실마다 컬러 TV로 시청각 시설을 마련해주고, 어학실과 도서관, 기숙사와 생활관, 수세식 화장실, 잔디구장, 테니스장 등, 당시로서는 대전과 충남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추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신경을 썼다.


지금도 건양중고등학교 교정은 언제 보아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지형상으로는 많은 벌들이 모여 사는 형국을 하고 있어서 사방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공부하는 등용문의 최적지임을 알 수 있다. 봉소골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게다가 앞에는 필봉(筆峰: 일명 갈뫼봉)이 우뚝 솟아 있고 아래로는 인내(仁川)가 휘감아 흐르니, 이곳이 머지않아 3정승까지 배출될 건양의 전당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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