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대,김희수총장 자서전/77/光金 대종회 회장을 맡다

2012.06.19 14:17:29

조상을 위하고 승계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 정립해 나가는 일



의료사업과 인재 육성에 힘쓰면서 나는 종친회의 일에도 열과 성을 기울였다. 1985년부터 9년 동안 광산 김씨 19~22대 대종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처음 대종회장직을 맡아 관장하자, 주변에서는 병원 일도 짐이 무거울 텐데 종친회 일까지 매달려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이미 보학에 대해 많은 것을 들어왔고 일가끼리 서로 돕고 아끼는 일은 생활의 근본이라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종친회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석학 토인비도 한국의 대가족제도와 효 사상을 높이 평가하여 한국 방문을 희망하였으며, 노후에 외롭다는 말을 되풀이하다가 끝내 아들집으로 합류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가족이나 혈통에 대한 애착은 인간의 본능이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희수총장(앞줄 오른쪽)이 광산김씨 종친회장으로서 신라김

씨 연합회에 참석했다.

 

더욱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혈통에 관한 한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는데, 광산 김씨는 유독 그러한 경향이 심한 편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켸켸묵은 보수주의라고 폄하하는 이도 있지만, 조상을 위하고 이를 전승 승계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 현재 자신의 위치를 곧고 올바르게 정립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사석에서 교수 한 분이 농담 삼아 하던 이야기가 지금도 머리에 떠오른다. 그 교수의 아들이 미국 유학 중인데 하루는 미국인 친구 회사에 놀러갔다가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양로원에 있는 부친이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고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이 화장을 해서 소화물로 우송해 달라며 전화를 끊더라는 내용이다.

 

그러니 미국사회에선 도덕이나 윤리가 실종된 지 오래인 것같다며 한탄하였다. 그렇다면 옛날에 읽었던 프랑스 유명한 소설가 카뮈의 『이방인(異邦人)』에 나오는 주인공의 거동도 단순한 픽션이 아닌 듯싶다. 양로원에 보낸 노모가 죽었는데도 사람이란 나이가 들면 죽기 마련이니 하등 슬퍼할 이유가 없다며 장례를 치르고 나서 애인과 함께 해수욕을 즐긴다는 줄거리였던 것이 생각난다.


하지만 서구나 일본에서도 가문을 중시 여기는 가정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일본인은 지연이나 혈통보다 학연을 중시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것도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꼼꼼하게 살펴보면 그들처럼 혈통 지상(至上)을 유별나게 따지는 국민도 드물 것이다. 그 보기로는 고노에(近衛文磨), 호소카와(細川護熙), 요시타(吉田茂) 등 전 수상 가통(家統)과 나시모토(梨本) 귀족의 긍지는 대단하다.

 

일본인에게 토착민 ‘아이누’ 피가 섞인 게 아니냐 물을라치면 그들은 길길이 뛴다.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영국 역시 귀족들의 위세는 대단하고 프랑스도 ‘드골’ 문중의 콧대는 유별나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케네디’가를 비롯 ‘록펠러’ 집안의 차별화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 역시 우리 문중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대종회장을 9년간 맡으면서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종친회에서 나의 업적을 추려 놓은 것이 있어 다시금 그때의 일을 회고해 본다.


광산회관 건립, 취사당 대종중과 서울 대종회 총본부와의 호칭 문제를 대전 유성호텔에서 8시간의 논의 끝에 슬기롭게 해결한 일, 해외 광산김씨종친회 결성 및 국내 각 시·도 종친회와 군·면 단위까지 종친회 조직, 광산김씨史의 발간과 그 이익금으로 광산장학회를 설립, 1989년 대홍수로 수해를 입은 대종중 취사당 보수, 광산김씨의 종훈(宗訓)과 종가(宗歌) 제정 및 보급 등이다.

 

이밖에도 광산김씨 전국체육대회를 각 시ㆍ도 대항전으로 하여 일가화합 및 숭조돈목의 계기 마련, 신년하례회 등 각종 모임을 활성화, 대종회 보학강좌의 정착 및 건양대학교의 예학연구원 설립, 재이북 선조를 위한 망배제 거행, 대종회의 재정자립도에 크게 기여한 점 등 종친회에서 기록해 놓은 것들을 읽어보면서,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다해내었을까 하는 감회가 밀려오면서 가슴 한켠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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