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총장 자서전/82/보학(譜學) 및 예학(禮學) 강의, 광산김씨사(光山金氏史) 발간

2012.07.31 15:12:03

사회에 나가 활동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



종친회란 훌륭한 조상님의 업적을 후세에게 전하고 조상의 유소(遺所)를 잘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보학을 가르치고 예학을 강론하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때문에 보학을 가르침은 물론 우리 문중의 훌륭한 어른이신 사계 김장생 선생과 신독재 김집 선생의 예학을 가르치고 광산김씨로서의 언행이 타인의 모범이 되도록 하기 위해 매년 하계방학 때면 강의를 가졌다.

 

 처음에는 성균관에서 또 대종회사무실에서 하다가 1996년도에는 건양대학에서 2박 3일의 보학ㆍ예학 강의를 가졌다. 약 400명이 참석, 성황리에 마쳤다.
나는 예학의 고장인 논산에 세워진 건양대에 예학연구원(禮學硏究院)을 설립하기로 마음먹고 김동기 교수님께 준비위원장을 위촉하였다. 사계·신독재의 훌륭하신 예학은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사회에 나가 행동하는 데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예학원 교육을 철저히 시킬 생각이다.

 

광산김씨 종친회장으로 대종회에 참석한 김희수 총장.

이런 보학, 예학강좌는 격년으로 서울과 지방에서 실시, 많은 종친에게 조상을 알리고 사계ㆍ신독재 선생의 예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광산김씨사 발간을 오랫동안 거론하던 차 1992년 김영돈(金永敦) 고문을 편집위원장으로 몇몇이 집필을 시작하였다. 광김의 정사를 집필하는 것이 대소문중 간의 서차(序次)문제, 문중에 오래 전부터 쌓여 있는 종친간의 감정문제 등 집필에 다소 애로는 있었으나 약 1년여  만에 편집을 끝냈다. 시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계보를 비롯 광산김씨 일가들의 활약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광산김씨사는 신라, 고려, 조선조로 분류하여 집필되었다. 나는 축간사에서 3년 전에 광산김씨사를 발간하기로 결의, 편집에 전력, 드디어 그 장한 뜻을 이루고 이를 우리 씨족의 정사로 삼아 출간하게 되어 비록 만시지탄이 없지 않으나 우리 씨족 모두 경하해야 할 일이라 써 넣었다.


또 집필에 전념하신 분의 노고를 치하했고, 국내의 일가분의 지극하신 헌성에 충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광산김씨사 간행비 잉여금 약 1억 2천여만 원 중 1억 원으로 대종회 장학회를 설립하여 그 이자로 매년 20여 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 광김의 후손이 된 긍지를 심어주고 있는데 건양학원을 운영하는 나로서는 이 이상의 큰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장학회는 영구히 후손에게 광김의 혼을 심어주는 좋은 사업이라 생각된다.


종친회도 하나의 단체인 이상 아무리 일가간의 모임이라 해도 각자 개성과 계파가 있어 때로는 고담준론에 이견들도 많았다. 우리 광김은 고래로 이른바 3대파라 하여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등으로 나뉘어 왔다. 그러다가 1939년 전남에서 이른바 장성대동보(長城大同譜)를 간행하였는데, 그 때 낭장동정 휘 규(珪)를 파조(派祖)로 하여 파보(派譜)를 따로 간행하던 일파가 새로이 대동보에 들게 되었으며, 당시의 문의(門議)로 13세(世) 휘 대린(大鱗)의 차자(次子) 곧 양간공의 아우로 삽입하도록 하였으므로 이때부터 우리 광김은 4대파로 되었다.

 

그러다 후세에 대동보를 간행하게 되었을 때 어쩐 일인지 뒤늦게 삽입된 낭장동정공파가 휘 대린(大鱗)의 장자 곧 양간공의 형으로 보첩에 오르게 되어 1984년 양간공파보(良簡公派譜) 역시 같은 모습으로 간행되었으므로 현재에 이르도록 두고두고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후 1985년까지도 대동보에 들지 아니한 또 한 파의 일가들이 있었는데, 그 일가들은 시조공 후 17세(世)라 하고 관직이 사온직장이었다는 휘 영(英)의 후손으로 충북 지역에서 따로 파보를 간행해 오던 일파였다. 이 일파를 1985년 음 10월 1일에 대종중의 결의로 13세(世) 휘 대린의 제3자, 곧 양간공의 둘째 아우로 하여 대동보에 수납토록 하였는데, 이로부터 우리 광김의 대파를 5대파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북 5도민과 영남·호남에 충청지방과 수도권 출신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의견이 백출, 이를 조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종회 회장 입장에서 늘 중용을 지키며 대화로 일머리를 풀어나가 이렇다 할 잡음 없이 이끌어 왔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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