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의 나이에 나는 대학 설립이라는 큰 일을 벌였다. 그에 앞서 고향 양촌에 건양중고교를 세웠고 10년여 만에 건양대를 개교하여 논산에 고등 교육기관이 들어서는 데 일조했다. 나의 육영사업의 발로는 애향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만일 일찍부터 육영사업에 매달렸더라면 교육적 입지가 좋은 곳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고향의 중학교가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1978년 늦가을 뜻밖에 양촌에서 면장님을 비롯 유지 몇 분이 김안과병원을 찾아오셨다. 용건은 면 소재의 중학교 운영이 아주 어렵다며 인수할 의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육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었지만 뜻밖의 요청이라 일단 보류하고 여비를 드리며 내려가시도록 했다. 한 달쯤 뒤에 그분들이 다시 상경하셔서 “김 박사
2011년 5월 16일은 건양대학교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되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 중이지만 나는 좀 간략하게 치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렵사리 건양대 설립 인가를 받고 길도 제대로 닦지 못한 채 첫 입학식을 가졌을 때를 생각하면 그때 고생했던 분들을 모두 초대해서 크게 자랑하고 싶고 한바탕 잔치도 벌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대학 입학자원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고 대학들은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직은 잔치를 벌일 때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심정이었다. 앞으로 10년 뒤 우리 대학이 교육중심대학으로 우뚝 서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로벌 대학으로 위상을 세울 때 그때 크게 자축 행사를 벌여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대신 논산 반야캠퍼스에 ‘스포츠콤플렉스’와 학교
ACE대학으로서 우리 대학은 올해 ‘동기유발학기제’라는 새로운 실험과 도전에 나섰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전공 공부는 다소 늦게 시작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전공이 어떤 것이며 전공을 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학습 동기를 명확하게 심어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막연하게 목적의식도 없이 대학에 들어왔다가 점점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전공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학생들을 보면서 보다 확고한 목표의식을 갖고 시작했더라면 실패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곤 했다. 그래서 신입생들이 겪을 일종의 시행착오를 줄여보고자 동기유발학기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그래서 2011년 1학기는 우리 대학 동기유발학기의 원년이 되었다. 신입생들이 바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한 달간 학습의욕 고취 및 취업 설계 특별교육을 받게 했다. 아직 대학생활에 적응하
1월 28일 제7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나는 제2의 창학을 선포했다. 이제 성인이 된 열정적이고 패기에 찬 젊은이의 모습이 바로 건양의 현재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도약과 전진, 혁신으로 50년, 100년의 역사를 새로이 써 내려가야 할 때가 바로 이 시점인 것이다.그래서 네 가지 비전을 취임사에서 제시했다. 첫째는 정직한 건양, 둘째는 실용 교육과 취업을 책임지는 건양, 셋째는 지역과 함께 하는 건양, 넷째는 글로벌 건양이다. 네 가지 비전은 투명한 학교 운영을 하고, 경쟁력을 갖추어 취업률 상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지역의 평생교육에 이바지하고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특성화와 유일화를 통해 아시아의 명문 대학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제2의 창학 정신인 ‘정직’을 우리 대학의 교시로
김희수총장이 일본도쿠시마대학을 방문, 건양대학교와의 자매대학협약식을 맺고 기념패를 들어보이고 있다.2011년은 건양대 설립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01년 개교 10주년 때 나는 총장으로 처음 취임하여 패기에 찬 젊은이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10년이란 세월이 쏜 화살처럼 지나가 버리고 이제 나는 7대 총장으로 20주년을 준비하고 있으니 지난 세월이 꿈꾼 듯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총장에 취임하면서 나는 ‘결자해지’란 말을 꺼냈다. 이후 10년 동안 나는 학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왔고, 그 노력의 결실도 하나둘 나타나 이제 나는 결자해지의 약속은 지켜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학교가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면 내려놓으려 했던 총장직을 이번에도 또 자의반 타의반으로 맡게 되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고,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12월에는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2010년도 일자리창출지원 유공자’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동안 전국 대학 중 최상위권의 취업률을 지켜왔으며, 해외취업을 활성화하고 산학협력을 통한 취업 연계활동을 활발히 해 온 공로로 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가르쳤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취업은 교육과 함께 나의 제일 큰 화두였다. 그래서 2003년 취업 전담 교수를 임용하여 취업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하고 교과목까지 개설했다. 2004년에는 전국 대학 최초로 취업 전용 건물인 ‘취업매직센터’를 건립하고 취업교육에 필요한 실습실과 기자재들을 들여왔다. 또 학과별로 취업 전담 교수를 위촉하여 학생들의 취업에 각별히 신경 쓰도록 했으며, 전국 최초로 취업지원관과 창업지원전담관을 채용한 바 있다. 재학생들에게는 방과후 비교과교육을
2010년 초 교과부에서 잘 가르치는 대학 10곳을 뽑아서 4년간 30억 원씩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우리 대학도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1월 말에 공고가 나왔다. 바로 TF팀을 구성해서 준비에 들어갔다. 교육중심대학은 우리 대학이 꾸준히 지향해 온 목표였기 때문에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과제였다. 대학의 학생 비율이 대학원생보다 학부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도 지난 10여 년간 정부 지원이 연구 쪽에 치우쳐 있어서, 우리 대학처럼 교육에 집중해 온 학교는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방대학의 경우 졸업생의 90% 이상이 사회로 진출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은 소수이기 때문에 취업을 위한 교육에 주력해 왔던 터였다. 사실 대학의 목적은 교육에 있으며 교수와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가르치고
2010년 1월 15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주요 대학 총장 초청 오찬간담회를 여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 이장무 서울대 총장, 이기수 고려대 총장,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 노동일 경북대 총장, 김인세 부산대 총장 등 전국 21개 대학 총장들과, 정정길 대통령 실장, 진동섭 교육과학문화수석,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도 함께 한 자리였다. 이날 대통령께서는 청년 취업 문제, 등록금 문제, 입학사정관제 문제 등을 거론하셨고 정부의 대학 정책과 G20 정상회의 등에 대해 총장단의 의견을 구하셨다. 그리고 당시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던 등록금 상한제를 언급하면서 등록금은 대학 자율로 정해야 하지 법으로 결정할 문제라 아니라고 하면서, 지난해 대학에서 스스로 등록금을 동결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치하하셨다. 경기가 회복되고
2009년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나는 캄보디아 정부의 초청을 받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하였다. 훈센(Samdech Hun Sen) 캄보디아 총리와 정부 인사들을 만나 교육과 의료 지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캄보디아에 안과전문병원 설립과 안과전문의 연수를 제공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기자재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캄보디아와의 인연은 2007년부터 김안과병원에서 매년 3회씩 대규모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면서 맺어졌다. 캄보디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내가 놀랐던 것은 안과 질환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열대지역이라 태양빛이 너무 강하여 백내장 환자들이 많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탓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실명한 사람도 상당수였다. 치료는커녕 안경마저 구입하지 못할 정도로 딱한 처지인 사람들도 있었다. 김안과병원은 의사, 간호사, 안경사
2009년은 우리 대학이 해외 취업에 첫발을 디딘 해이다. 싱가포르, 일본, 중국에 300명의 학생을 해외 인턴십으로 내보낸 것이다. 아마 단일 대학으로는 유일한 대규모 해외 인턴십이 아닌가 싶다. 우리 대학이 취업 명문으로 몇 년째 계속 취업률 상위를 지켜왔지만, 학생들의 외국어 실력을 키우고 해외 근무 경험을 통해 취업의 질을 높여 보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 2008년 10월부터 해외취업전략팀을 구성하여 글로벌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학생들이 취업할 대상 국가와 지역을 선정하여 연결하고, 학생들을 위한 사전교육 프로그램들을 만든 것이다. 2009년 새 학기부터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 인턴십 신청을 받았다. 학생들이 해당국에서 어학연수와 함께 유급 인턴으로 일한 뒤 취업하는 방식으로, 인턴십을 나가면 4학년 2학기는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