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영 칼럼/ 한림대학교의료원과 전공의노조의 단체교섭이 시작됐다. 지난달 백중앙의료원에 이어 두 번째다. 여기에 오는 11일에는 중앙대학교의료원과의 단체교섭 상견례도 예정돼 있다. 지난해 의정 갈등 이후 의료계는 전공의 수련환경과 노동권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잇따른 전공의 단체교섭은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한국 의료계 노사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교섭의 직접적인 계기는 한림대학교의료원이 올해 3월 신규 입사 전공의를 대상으로 임금체계를 변경하면서 촉발됐다. 일부 전공의들은 실질적인 임금 감소 가능성을 제기했고, 결국 집단적인 교섭 요구로 이어졌다. 노조는 적정 시급 보장과 교육권, 복지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병원 측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실 전공의 단체교섭은 이제 막 첫발을 뗀 단계다. 따라서 이번 교섭의 성패는 구체적인 협상 결과보다 노사 간 신뢰를 얼마나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진행된 백중앙의료원과의 단체교섭은 의미 있는 선례를 남겼다. 전공의들이 공식적인 교섭 테이블에 참여해 수련환경과 근로조건 문제를 논의했다는 점 자체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그동안 전공의들은 의료기관 내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었고, 근무환경 개선 요구를 체계적으로 전달할 창구도 부족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병원별로 임금체계와 당직수당, 복지제도가 크게 다른 현실에서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전공의들이 요구하는 사안 중 일부는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라 수련 시스템과 병원 운영 구조 전반에 연결돼 있어 단기간 내 해결이 쉽지 않다는 한계도 확인됐다.
무엇보다 병원과 전공의 사이에 쌓여온 불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공의들은 일방적인 제도 변경 가능성을 우려하고, 병원은 재정 부담과 운영상 현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식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면 교섭은 자칫 대립과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해외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전공의 노조 활동이 오래전부터 제도화돼 있다. 뉴욕의 공립병원 전공의 노조인 CIR(Committee of Interns and Residents)는 수만 명의 전공의를 대표하며 임금, 근무시간, 휴식권, 육아휴직 등을 병원과 정기적으로 협상한다. 협상 과정에서 파업 가능성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노사 모두 교섭 자체를 제도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전공의들은 대표 조직을 통해 정부 및 NHS와 지속적으로 협상한다. 2023~2024년 전공의 임금 인상 문제를 둘러싸고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지만, 결국 정부와 의료계는 협상 테이블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다. 갈등은 있었지만 대화의 구조는 유지됐다.
독일 역시 의사노조인 마부르거 분트(Marburger Bund)가 병원협회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전공의를 포함한 의사들의 근로조건을 협상한다. 여기서는 근로시간, 당직수당, 휴가 등이 명확하게 계약으로 규정돼 있어 분쟁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노조의 존재 자체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섭은 갈등의 수단이 아니라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장치로 인식된다.
한국의 전공의 단체교섭도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 병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임금구조 역시 상이하다. 따라서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기보다는 각 기관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공통의 원칙을 만들어 가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수련환경 개선이라는 목표는 노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다. 전공의가 더 나은 환경에서 수련받을 수 있어야 의료의 질도 향상된다. 결국 환자에게 돌아가는 의료서비스의 수준 역시 높아진다. 노조의 요구와 병원의 경영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더라도, 최종 목표는 다르지 않다.
한림대학교의료원과 전공의노조의 교섭은 이제 시작이다. 이어 오는 11일에는 중앙대학교의료원과의 상견례도 예정돼 있어 전공의노조의 교섭 움직임은 다른 수련병원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얻느냐가 아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대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병원마다 임금체계와 수련환경이 다른 만큼 획일적 기준보다는 현장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한림대의료원 교섭과 중앙대의료원 상견례가 , 한국 의료계에 성숙한 노사문화와 협력적 수련환경을 정착시키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