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한 한국 소화기내시경의 임상·연구 역량을 토대로 세계 내시경의 변화를 선도하는 학회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올해 국제학술대회에는 20개국에서 역대 최대인 182편의 초록이 접수됐다. 학회는 34명의 학술 관련 전문가가 연구의 학술적 가치와 실제 임상 적용 가능성을 심사하고,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인공지능(AI) 활용 연구의 오류 가능성까지 검증하는 심사체계를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4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KSGE Days 2026’ 기자간담회에서 창립 50주년의 성과와 향후 학술·국제화 전략을 공개했다. 학술대회는 9월 4~5일 열리며 21개국에서 약 750명이 참가한다. 유럽과 일본, 몽골, 태국, 대만 등 해외 주요 소화기내시경학회 관계자들도 참석해 학회 창립 50주년을 함께 기념한다.
김현수 이사장은 “우리나라 소화기내시경 의료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이는 어느 한 세대가 이룬 것이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 학회 발전을 위해 헌신한 선배들과 환자 곁에서 내시경을 시행하고 연구와 교육을 이끌어 온 회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50주년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앞으로 소화기내시경은 인공지능과 로봇, 정밀의료, 새로운 내시경 치료기술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빠른 변화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기술 발전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이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환자”라며 “새로운 기술이 환자의 안전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국민이 안전하고 질 높은 내시경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학회가 더욱 충실하게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50년이 대한민국 소화기내시경의 기반을 다진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50년은 세계 소화기내시경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돼야 한다”며 “국민에게 신뢰받고 회원에게 자부심을 주며 세계 소화기내시경 발전을 선도하는 학회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 20개국 182편 초록 ‘역대 최대’…학술성·임상 활용성 철저히 검증
창립 5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이번 KSGE Days 2026에서 학회가 비중 있게 내세운 것은 학술 콘텐츠다.
학회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는 20개국에서 총 182편의 초록이 접수돼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144편이 구연과 포스터 등의 형태로 발표된다.
기자간담회에서도 이번 대회에 제출된 연구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논문이나 초록 한두 편을 소개해 달라는 질문이 나왔다. 참석 임원들은 초록 전체를 분야별 학술위원들이 나눠 전문적으로 심사하고 있는 만큼 현장에서 특정 연구를 즉석에서 지목해 평가하기보다는 학술이사의 검토를 거쳐 주요 연구를 정확하게 선별해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답변은 이번 대회의 초록 선정 과정이 단순한 접수·채택 방식이 아니라 세부 전문분야별 심사체계를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회 측에 따르면 학술위원장과 부위원장, 분야별 팀장·간사, 학술위원 등 총 34명이 초록 심사에 참여하고 있다. 접수된 초록은 전문 분야별로 배분한 뒤 연구 내용의 오류 가능성을 확인하고 학술적 의미와 독창성, 실제 임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생성형 AI가 논문과 초록 작성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최근 연구환경 변화도 심사에 반영하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초록이 접수되면 분야별로 배분해 AI에 의해 작성됐거나 잘못된 내용이 포함된 연구 등을 검증하고 오류를 걸러내는 과정을 거친다”며 “이후 학술적인 의미가 얼마나 있는지, 실제 임상 적용이 가능한지 등을 철저하게 심사해 채택한다”고 설명했다.
선정된 초록 가운데 학술적 가치가 특히 높은 연구는 별도로 집중 조명한다. 우수 연구자는 ‘스포트라이트 스테이지’에서 직접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학회는 우수 발표에 대한 시상도 진행한다. 상부위장관과 하부위장관, 췌담도 등 세부 분야에서도 우수 연구를 선별한다.

◇ 바렛식도부터 AI·바이오마커까지…동서양 치료전략 한자리
초록 발표와 함께 해외 석학들이 참여하는 스페셜 렉처도 이번 대회의 주요 학술 프로그램이다.
특히 유럽 소화기내시경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 서구에서 중요한 임상 문제인 바렛식도와 관련 식도암의 진단 및 치료전략을 소개했다.
서구에서는 비만 등과 관련해 바렛식도와 식도암이 중요한 질환으로 다뤄지는 반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발생 빈도가 낮다. 반대로 한국은 위암 진단과 치료내시경 분야에서 세계적인 임상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학회는 이 같은 동서양의 질환 차이를 공동연구와 학술교류의 강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서구에서 바렛식도와 관련 암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나라에서 위암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며 “AI 영상이나 바이오마커를 활용하고 환자를 세분화해 식도를 보존하면서 보다 덜 침습적으로 치료하는 방법 등이 소개됐다”고 설명했다.
◇ ESGE와 공식 MOU…유럽·한국 오가며 정기 공동세션 추진
국제협력도 한 단계 확대된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유럽소화기내시경학회(ESGE)와 공식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유럽 현지와 한국을 오가며 정기적인 공동 세션을 마련하는 등 지속적인 학술교류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학회 관계자는 “유럽을 대표하는 내시경학회와 공식적인 교류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유럽에서도 정기적으로 공동 세션을 열고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KSGE Days의 국제화 전략은 단순히 해외 참가자 수를 늘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학회는 상대적으로 내시경 의료 인프라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아시아 국가 등에 한국이 축적한 검진·진단·치료 경험과 교육 시스템을 전파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 한국 국가 위암검진 경험, 몽골 등 아시아 국가와 공유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국과 몽골의 국가 위암검진 경험도 함께 다뤄졌다.
한국은 1999년부터 국가 주도의 암 검진체계를 운영하면서 위암 조기발견과 치료 분야에서 상당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 간담회에서는 몽골이 2022년부터 국가 차원의 위암검진을 시작했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학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국가 위암검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했다”며 “이제 이러한 경험을 다른 국가 의료진에게 알려줄 수 있는 단계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는 KSGE Days가 단순한 국제학술대회를 넘어 한국에서 정착된 내시경 검진 시스템과 임상 경험을 성장 단계에 있는 국가들과 공유하는 교육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한국산 스텐트 유럽 다국가·다기관 연구…‘K-치료내시경’ 경쟁력
치료내시경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개발된 의료기기의 글로벌 임상연구가 주요 학술 의제로 다뤄졌다.
학회에 따르면 한국에서 개발된 스텐트를 활용한 유럽 다국가·다기관 연구가 진행 중이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관련 연구의 중간 내용도 소개된다.
특히 기존의 표준적인 담즙 배액 방법인 ERCP 시행이 어려운 환자에서 초음파내시경을 이용한 담즙 배액술을 적용하는 치료전략과 동서양의 시술 기준 및 술기 차이 등이 논의된다.
학회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담즙 배액을 비롯한 췌담도 치료내시경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개발된 스텐트를 이용해 유럽에서 다국가·다기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한국 소화기내시경의 경쟁력이 의료진의 술기를 넘어 스텐트와 각종 액세서리, AI 프로그램, 로봇 등 의료기기와 디지털 기술로 확장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 “내시경 본체 국산화도 가야 할 길”…산업계 투자 필요
기자간담회에서는 일본 업체들이 주도해 온 내시경 본체 시장과 국산화 가능성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학회 측은 국내에서도 내시경 본체를 개발해 제품화한 사례가 있고 최근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새로운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과거 일본 기업 중심이던 세계 내시경 시장도 점차 다변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와 로봇은 현재 단계에서는 내시경 자체를 대체하기보다 기존 내시경에 결합해 진단과 치료 능력을 높이는 보조기술의 성격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국내 의료진의 내시경 술기와 비교하면 내시경 본체를 비롯한 핵심 장비 산업에서는 여전히 격차가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김현수 이사장은 “우리나라에는 내시경 분야에서 세계 1위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상당히 많지만 내시경 장비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이 현실”이라며 “기기 개발에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 만큼 국내 주요 기업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온 단계는 아니지만 학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며 “내시경 기술과 테크닉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선 만큼 장비 분야에서도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제약·의료기기업계 대거 참여…학술성과 산업 연결도 주목
창립 50주년 학술대회에는 국내외 제약·의료기기 기업들도 대거 참여해 소화기질환 치료제와 내시경 관련 의료기기·기술 등을 소개했다.
행사에는 올림푸스를 비롯해 대웅제약, 유한양행, 제일약품, 동아ST 등이 부스와 초록 발표 섹션 등에 참여했으며 행사 자료에는 HK이노엔, 일양약품, 삼일제약, 한미약품, 한국오츠카제약, 대원제약, 안국약품 등 제약기업도 이름을 올렸다.
의료기기·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엠아이텍(M.I.Tech), 넥스트바이오메디컬, 메드인테크(MedInTech), 제마헬스케어(GEMA Healthcare) 등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AI 내시경과 로봇, 치료내시경, 스텐트 및 각종 보조기기의 발전이 향후 50년의 핵심 과제로 제시된 만큼 학술 연구성과를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산학 협력의 중요성도 한층 커지고 있다.
특히 학회가 내시경 본체를 비롯한 핵심 의료기기의 국산화와 국내 산업계의 투자 필요성을 직접 제기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선 국내 의료진의 술기와 연구역량이 국산 의료기기 개발로 이어질 경우 한국 소화기내시경의 경쟁력이 임상·학술을 넘어 산업 분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 AI 내시경, 작은 용종 더 찾지만…“대장암 사망 감소 효과는 아직 검증 필요”
AI 내시경의 임상 도입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과잉진단 문제도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현재 AI 기반 대장내시경은 작은 용종까지 찾아내는 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용종 발견 증가가 실제 대장암 발생이나 사망률 감소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학회 측의 판단이다.
학회 인공지능 관련 연구를 맡고 있는 정현수 교수는 “AI를 이용하면서 작은 용종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궁극적인 목표는 용종을 많이 발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해 대장암을 빨리 발견하고 대장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결과를 밝히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과잉진단 가능성에 대한 우려 역시 앞으로 연구를 통해 규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AI 내시경의 역할은 단순한 병변 발견을 넘어 발견된 병변의 성격을 판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학회 측은 AI의 기능을 크게 병변을 찾아내는 것과 발견된 용종이 치료가 필요한 병변인지 판단하는 것을 보조하는 기능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판별 능력이 충분히 검증될 경우 실제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보다 정확하게 선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학회 관계자는 “전문가는 AI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제거해야 할 용종과 그렇지 않은 병변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며 “AI는 의료진의 병변 판단을 보조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병변을 제거할지는 의사의 임상적 판단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 P-CAB 빠르게 성장…“PPI 완전 대체 판단은 신중해야”
위식도역류질환 등 위산 관련 질환 치료에서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는 칼륨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P-CAB)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학회 측은 국내 제약사들이 여러 P-CAB 계열 신약을 개발한 것은 국내 제약산업의 연구개발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하면서도 기존 프로톤펌프억제제(PPI)를 완전히 대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P-CAB은 식사와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적어 복용 편의성이 높은 점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반면 PPI는 약 30년 동안 임상에서 사용되면서 효과뿐 아니라 부작용과 장기 안전성 자료가 상당 부분 축적돼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학회 관계자는 “PPI와 P-CAB 모두 효과가 좋은 약”이라며 “P-CAB은 비교적 최근 등장해 좋은 점이 많이 부각돼 있지만 장기간 사용에 따른 자료는 앞으로 더 축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P-CAB이 PPI를 일률적으로 대체한다기보다 환자의 상태와 복약 특성 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치료수단이 확대됐다는 관점이 적절하다는 설명이다.
◇ ‘Clinical Endoscopy’ 아시아 대표 학술지로 키운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공식 학술지 ‘Clinical Endoscopy’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도 속도를 낸다.
학회는 투고 시스템을 개선하고 국내외 심사위원을 보강하는 한편 대만,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국가의 내시경 관련 학술단체와 연계를 확대하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신뢰를 얻고 논문의 질을 지속적으로 높인다면 Clinical Endoscopy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내시경 학술지로 성장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가 이날 제시한 ‘다음 50년’의 방향은 분명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선진국의 내시경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세계적인 임상 수준에 도달했다면 앞으로는 한국이 축적한 국가 암검진 시스템과 치료내시경 술기, 연구성과를 다른 국가에 전수하고 AI·로봇·의료기기 개발과 국제 공동연구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역대 최대인 182편의 초록 접수와 34명의 전문 심사체계, ESGE와의 공식 협력, 한국산 스텐트의 유럽 다국가 연구, 국내외 제약·의료기기 기업의 폭넓은 참여는 한국 소화기내시경이 ‘기술을 배우는 단계’에서 ‘학술·기술·산업을 세계와 공유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김현수 이사장이 강조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환자”라는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50년을 세계 소화기내시경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간으로 열겠다는 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