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법으로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했을 만큼 돌연변이의 발생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이 때문에 아랍인 또는 유태인에 비해 유전질환은 적은 편이지만 열성유전에서 나타나는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병 중 하나다.
국내에서 진단이 가능해진 15년 동안의 결과를 분석한 결과 60여종의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장 흔한 질환으로는 미토콘드리아호흡연쇄효소 이상과 케톤분해장애, 메칠말론산혈증, 프로피온산혈증의 순이었다.
과거에는 치료는 물론 진단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사가 없어 외국에까지 검체를 보내 의뢰를 해야 했을 만큼 진단이 어려웠다. 지금도 검사 또는 진단할 수 있는 곳이 전국에 5개 이내일 만큼 많지 않지만 특정 증상이 있을 때 50cc만의 소변으로도 정확하게 진단 가능한 검사법이 개발, 시행되고 있을 만큼 형편은 좋아진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이홍진 교수가 오는 10월 9일 한림대학교성심병원 한마음홀에서 개최되는 ‘제3회 한림-파도바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선천성 대사장애 질환과 유기산 대사이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할 예정으로, 이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행해 전국 의료기관과 제약회사로 확산된 소변검사를 통한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 진단법과 분석방법, 국내의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 진단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의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 실적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물질, 유기산
우리 몸은 대사와 분해과정을 끊임없이 번복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면 그 중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전분은 포도당, 지방은 글리세린과 지방산으로 각각 분해된 뒤 체내로 흡수돼 필요 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이때 최종적으로 사용되는 에너지는 ATP(아데노신삼인산)으로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크레브스 사이클(TCA Cycle)이라는 화학적인 반응을 거쳐 만들어지며, 따라서 세포의 유지, 곧 생명의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르복실기를 가지고 있는 물질 즉 유기산은 아미노산, 탄수화물 및 지방산의 중간 대사산물들로 이러한 대사과정에서 생성되며, 그 종류가 굉장히 많다.
체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대사과정은 자연적으로는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촉매가 작용해야 하며, 체내에서 촉매로 작용하는 것이 효소이다. 효소는 순수 단백질로 주효소인 아포효소와 촉매 역할을 담당하는 비타민, 미네랄로 구성된 조효소가 결합돼 작용하는데 부족하면 적절한 대사가 일어나지 못해 질병의 상태가 된다.
만약 어느 단계의 효소가 부족하면 그 단계의 대사가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그럴 경우 체내에는 두 가지 상태가 발생한다. 하나는 전구물질의 농도가 증가하는 것이고, 둘째는 만들어져야 할 물질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현상이다. 만약 과량의 전구물질이 인체에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물질이라면 독성의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이 때 만들어져야 할 물질이 생명의 유지에 꼭 필요한 물질이라면(대부분의 경우 에너지원으로 작용하는 물질에 해당된다) 크레브스싸이클에 문제를 일으켜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유기산혈증은 간이나 신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주로 신경계 즉 뇌의 증상을 일으킨다.
환자수가 적은 탓에 진단 가능한 연구소와 의사도 극소수
효소와 관련한 유전자는 2개가 함께 짝을 이룬다. 하나는 아버지, 또 다른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데 두 개 중 하나는 정상이지만 나머지가 비정상일 때를 보인자라 하고, 두 개 모두가 비정상일 때를 질병의 상태라고 한다. 하나의 유전자가 비정상이라 해도 생활하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 역시 대부분 열성유전의 양상을 보인다. 열성유전은 근친결혼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고립된 상태에서 친지와 결혼을 많이 한 유태인이나 아랍인에게서 유전질환이 많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시켰을 만큼 근친결혼이 많지 않았던 탓에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자 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진단할 수 있는 의사수가 많지 않고 진단기술 역시 발달하지 않은 실정이다. 지금도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을 연구하는 기관이나 의사를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단순 간질과 헛갈릴 만큼 증상이 다양한 질환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은 특정효소의 결핍으로 단백질대사에 이상이 생기면서 몸에 축적된 독성물질로 인해 대뇌와 신장, 간 등의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이다.
고젖산혈증과 메이플시럽뇨증(분지케톤산뇨증), 이소길초산혈증, 프로피온산혈증, 메틸말론산혈증, 글루타르산혈증 등이 대표적이며 그 수가 60여종에 달할 만큼 다양하다. 같은 질병, 예를 들면 메칠말론산뇨증의 경우에도 돌연변이의 종류 즉 효소의 활성도에 따라 질병의 심각성이나 증상은 달라진다.
잔류 효소활성도가 거의 없는 경우를 전형적인 형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생후 3~4일 이내의 신생아기에 증상이 나타나며, 효소 활성도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경우에는 소아기 또는 청소년기에 증상이 두드러질 수도 있다. 심한 전형적인 형의 경우에는 경련발작이나 혼수, 의식장애가 올 수 있으며 잘 먹지 않고 늘어지거나 호흡곤란, 구토, 근육이완 및 경직, 경련, 호흡곤란 등이 신생아기에 나타난다.
소아기 또는 청소년기에 늦게 나타나는 형의 경우에는 급성기에는 심한 형처럼 경련발작, 홍수 및 의식의 장애가 올 수 있고, 만성적으로 손상을 입어온 경우에는 정신지체 증상, 운동기능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증상이 비슷한 탓에 간혹 단순 간질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은 조기에 치료하지 않을 경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또 회복한다 해도 여러 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 만큼 무엇보다 조기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 소아기 또는 청소년기에 갑자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신생아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무조건 안심해서는 안 된다.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 연구 선도기관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은 국내에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기관 및 연구소가 극히 드물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외국으로 국내 환자의 검체를 보내 검사를 의뢰하는 현실을 극복하는 동시에 국내의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 연구를 선도하기 위해 지난 1990년대부터 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질환을 진단 및 분석해오고 있다.
1990년부터 인프라와 조직을 갖추기 시작해 1994년에는 분석장비인 휴렛패커드의 개스크로마토그라피와 질량분석기를 도입했으며 1997년부터는 유기산 분석 연구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어린이병원의 L. Sweetman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유기산 분석을 시작했다.
이후 전국의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서 의뢰하는 검체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병원을 찾는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자도 급증, 1997년부터 2005년까지 1787명 중 470명의 환자에 대해 30여 가지의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을 진단했다. 이 중 가장 흔한 질환은 미토콘드리아호흡연쇄효소 이상과 케톤분해장애였고 메칠말론산혈증과 프로피온산혈증의 빈도도 높았다.
특정 증상이 있을 때 50cc의 소변만으로 진단 OK
유기산대사이상 질환을 정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변의 유기산 분석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타의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간기능검사, 신장기능검사 역시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유전자검사는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으로 진단 받은 경우에 확진을 위해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는 적은 양의 소변만으로 신경계 증상이나 간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 정확하게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을 진단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이 진보했다.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이홍진 교수는 나이와 상관없이 경련발작이나 의식 장애, 혼수 등의 증상이 있고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며 혈중에 암모니아 수치가 정상 이상(성인 10~80mcg/dl 또는 6~47umol/L, 소아 40~80mcg/dl, 신생아 90~150mcg/dl)일 경우, 또 혈구 감소증이 있으며 산혈증이 있을 때 소변으로 유기산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유기산 검사는 소변 50cc 정도면 유기산의 종류와 패턴을 파악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으며 애매한 경우에도 식사조절 후 패턴의 변화를 보고 진단이 가능하다. 현재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에서는 83종의 유기산을 분석할 수 있으며 60여 질환에 대해 진단내리고 있다.
수치 파악보다도 결과 분석과 진단이 관건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의 경우 어느 한 질환에서 한 가지 물질만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유기산의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므로 그 양상(pattern)을 보고 진단한다.
예를 들면 미토콘드리아호흡연쇄효소 이상(크레브르회로의 이상)의 경우에는 젖산과 피루브산, 말레인산, 말산, 시트르산 등의 상승이 나타나고, 케톤분해장애는 젖산, 피루브산, 3-히드록시부티르산, 아세토아세트산 및 다양한 이카르복실산들의 상승이 눈에 띄게 높다.
또 메칠말론산의 경우에는 메칠말론산, 3-히드록시프로피온산, 3-히드록시부티르산, 아세토아세트산, 프로피오닐글리신, 메칠시트르산 등의 상승이 있으며, 프로피온산혈증은 메칠말론산혈증과 양상이 비슷하지만 메칠말론산의 수치만 변화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홍진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유기산 대사이상 질환은 조기에 치료하지 않을 경우 심하면 사망에 이를 만큼 무서운 병”이라며 “유기산 분석은 소변검사를 통해 유기산의 수치를 파악하는 것보다 그 결과를 분석하고 질환으로 진단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보다 전문적인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