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신규 감염인이 지난해 927명으로 전년보다 4.9% 감소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통계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마냥 낙관하기 어려운 대목도 적지 않다. 신규 감염인의 66%가 20~30대였고, 외국인 감염인 비중은 전년보다 증가했다. 무엇보다 생존 감염인은 1만7557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으며, 65세 이상 고령 감염인도 증가하는 추세다.국내 상황을 세계와 비교하면 HIV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공중보건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HIV 감염인은 약 4010만 명으로 추산된다. 같은 해 신규 감염인은 약 130만 명, 에이즈 관련 사망자는 약 63만 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과 비교하면 신규 감염은 약 40% 가까이 감소했고 사망도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매일 수천 명이 새롭게 감염되고 있다.
지역별 편차는 더욱 뚜렷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여전히 전 세계 HIV 감염인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여성과 청소년 감염 비율이 높다. 반면 유럽과 북미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와 노출 전 예방요법(PrEP) 확대를 통해 신규 감염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미국은 최근 연간 약 3만 건 안팎의 신규 HIV 감염이 발생하고 있으며, 신규 감염 감소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PrEP 확대와 조기 검사를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예방 정책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런던을 중심으로 PrEP 보급과 신속검사 확대가 이뤄지면서 최근 10여 년 사이 신규 감염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조기 진단과 즉각적인 치료를 통해 감염인의 바이러스 농도를 억제하면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개념도 예방 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아시아에서도 국가별 차이가 크다. 일본은 연간 신규 HIV 감염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남성 간 성접촉(MSM)을 중심으로 감염이 이어지고 있으며, 중국은 전체 신규 감염 규모가 여전히 큰 국가로 분류된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 접촉 감염이 주요 전파 경로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감염 경로 응답자의 99.1%가 성 접촉을 통해 감염됐다고 답했고, 그중 동성 간 성 접촉이 62.6%를 차지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성 접촉 예방 교육과 조기 검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HIV는 이제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일반인과 비슷한 기대수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수준까지 억제되면 성 접촉을 통한 전파 위험도 사실상 없어진다. 문제는 치료 기술보다 조기 발견이다.
국내 신규 감염인의 약 3분의 1이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증상이 나타난 뒤 또는 입원과 수술 과정에서 뒤늦게 감염 사실을 확인했다. HIV는 감염 초기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위험한 성 접촉이 있었다면 증상이 없어도 검사를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다.
신규 감염이 감소했다는 통계는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감염인의 고령화와 젊은 층 중심의 신규 감염, 외국인 비중 증가 등 새로운 변화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경험이 보여주듯 HIV 대응은 치료보다 예방, 예방보다 조기 발견이 핵심이다. 숫자가 줄었다는 안도감보다 검사를 쉽게 받고, 편견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