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영 칼럼/"신장이 망가진 뒤 치료하는 나라와, 신장을 지키기 위해 투자하는 나라."
중증 IgA 신병증(IgA Nephropathy)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는 우리나라 신장질환 정책이 여전히 '사후 치료'에 머물러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IgA 신병증은 국내 1차성 사구체신염의 약 4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사구체 질환이다. 흔하다는 이유로 가볍게 여겨지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질환은 면역 이상으로 신장이 지속적으로 손상되는 진행성 자가면역질환으로, 상당수 환자가 결국 말기신부전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환자의 대부분이 20~40대 청년층이라는 점이다. 학업과 취업, 결혼과 육아,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에 투석과 이식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개인의 비극은 곧 국가 생산성의 손실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중증 IgA 신병증을 독립 질환으로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질병분류체계에서는 단순 혈뇨 코드 안에 포함돼 있고, 희귀질환 산정특례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결국 중증 환자조차 비급여 치료를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최근 개발된 표적치료제는 기존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열고 있다. 과거 스테로이드는 신장 기능을 늦추는 대신 골괴사, 당뇨병, 백내장, 감염, 외모 변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표적치료제는 이러한 부작용을 크게 줄이면서 투석과 신장이식을 수년 이상 늦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신약은 비싸다. 하지만 진짜 비싼 것은 약값이 아니라 투석이다.
혈액투석 환자는 평생 주 3회 병원을 찾아야 하며, 건강보험 재정은 매년 막대한 비용을 부담한다. 여기에 노동력 상실과 가족의 돌봄 부담, 삶의 질 저하까지 더하면 사회경제적 비용은 약값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선진국들은 이미 관점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최근 수년간 IgA 신병증 치료제를 잇달아 승인하며 조기 치료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단백뇨 감소와 신기능 보존을 중요한 치료 목표로 설정하고 고위험 환자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유럽 역시 유럽신장학회(ERA)를 중심으로 조기 위험도 평가와 표적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영국은 희귀신장질환 등록체계(RaDaR)를 운영하며 장기간 환자를 추적 관리하고, 질환 진행 위험을 분석해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일본은 건강검진을 통한 혈뇨 발견과 신장생검이 활성화돼 있어 IgA 신병증을 비교적 조기에 진단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조기 발견과 지속적인 관리가 말기신부전 감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도 변화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염색체우성 다낭성신장질환(ADPKD)이다. 과거에는 환자 수가 많다는 이유로 희귀질환 지정이 어려웠지만, 질환 진행 위험이 높은 환자군을 별도로 분류해 산정특례를 적용하면서 치료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중증 IgA 신병증 역시 같은 접근이 가능하다.
질병 특성을 반영한 독립 상병코드를 마련하고, 진행 위험이 높은 환자를 별도로 정의해 희귀질환 산정특례를 적용하며, 효과가 입증된 표적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를 신속히 검토해야 한다.
이는 특정 신약을 지원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국가 재정을 어디에 먼저 투자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묻는 것이다.
투석비는 아끼지 않으면서 투석을 막는 치료에는 인색한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의료정책은 질병이 악화된 뒤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를 막기 위해 투자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예방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만성콩팥병 환자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치료제가 아니라,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의 변화다.
중증 IgA 신병증은 우리 의료체계가 '사후 지원'에서 '사전 예방'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신장이 망가진 뒤 평생 투석을 지원하는 국가보다, 신장이 망가지기 전에 환자의 미래를 지켜주는 국가가 진정한 의료 선진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