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품을 만들면 팔린다."한때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을 갖춘 제품도 인증과 통관, 표시제도라는 규제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시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이제 기업들이 경쟁하는 대상은 경쟁사가 아니라 '규제'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도네시아에 민·관 합동 지원단을 파견해 거둔 성과는 단순한 외교 일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오는 10월 시행되는 화장품 할랄 표시 의무화를 앞두고 국내 기업들이 직면했던 현실적인 문제를 정부가 직접 협상을 통해 해결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다. 2억8000만 명이 넘는 인구와 빠르게 성장하는 소비시장은 K-뷰티가 반드시 공략해야 할 전략시장이다. 하지만 그 시장으로 들어가는 문은 생각보다 높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할랄 슈퍼바이저' 제도다. 비무슬림 국가인 한국에서 무슬림 감독자를 반드시 고용해야 한다는 조건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였다. 기업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정부가 나서 현지 규제당국을 설득했고, 교육과 자격을 갖춘 전문가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이끌어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중복 규제의 해소다. 이미 할랄 인증을 받은 제조소인데도 인증 신청자가 달라질 때마다 반복적으로 현장실사를 받아야 했던 절차를 면제하기로 한 것은 기업들의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여주는 변화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관련 규정이 개정되기 전이라도 행정적으로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규정은 남아 있는데 현장에서는 개선된 기준을 먼저 적용하는 유연한 행정은 기업들이 가장 반기는 변화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히 화장품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료기기와 의약품, 건강기능식품을 비롯해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대부분의 산업은 이제 '비관세장벽'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관세는 낮아졌지만 인증과 표시, 시험 기준, 허가 절차는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이러한 규제를 바꾸기 어렵다. 결국 정부가 상대국 규제기관과 협상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규제외교'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수출 지원은 금융 지원이나 전시회 참가, 마케팅 지원에 집중돼 왔다. 물론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아무리 홍보를 잘해도 인증을 받지 못하면 제품은 팔 수 없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통관이 막히면 시장 진출은 불가능하다.
이번 인도네시아 사례는 정부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장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업 대신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마음껏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물론 한 번의 협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중동과 아세안, 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은 저마다 다른 인증과 규제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 간 협력 채널을 상시화하고, 업계의 애로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에 합의한 핫라인과 실무 워킹그룹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K-뷰티는 이미 세계인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품질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넓히는 일이다.
수출은 기업이 하지만, 시장의 문은 정부가 연다. 앞으로의 수출 경쟁력은 공장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대국 규제기관과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만들어진다.
이번 인도네시아 협상은 작은 성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K-뷰티의 미래는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에 더해 '규제외교'라는 새로운 국가 경쟁력이 얼마나 뒷받침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우리 수출 정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