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이 대주주 간 법적 분쟁에 이어 오너 일가의 법인카드 및 회사 자산 사적 사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다시 지배구조 불확실성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핵심 사업회사인 한미약품은 올해 상반기 호실적과 대형 기술수출 성과를 거두며 사업 측면에서는 최근 수년 가운데 가장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룹 지배구조를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전문경영인 체제의 독립성과 투자·연구개발 의사결정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한미약품의 최대 현안은 호실적과 기술수출로 확보한 성장 동력을 이어가면서 다시 불거진 한미그룹의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얼마나 신속하게 해소하느냐로 요약된다.
최근에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일가의 법인카드와 회사 자산 사적 사용 의혹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법인 차량과 별장형 부동산, 골프장·콘도 회원권 등 회사 소유 자산이 오너 일가를 위해 사용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한미그룹은 관련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반박했다.회사 측은 송 회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와 사임 이후에도 그룹사 경영관리와 업무 수행을 위해 관련 예산을 적정하게 사용했다고 밝혔다. 문제로 지목된 백화점·명품관 결제는 임직원과 고객 선물 구입, 의료기관 결제는 복리후생, 해외 사용은 업무상 출장과 관련된 비용이었다는 설명이다.
또 의혹 제기에 활용된 자료에는 비용 환입이나 결제 취소 내역 등이 반영되지 않아 실제 비용 집행 내용을 정확히 보여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은 한미그룹 경영권을 유지해온 이른바 ‘4자 연합’의 균열이 법적 분쟁으로 번진 가운데 불거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신동국 회장과 송영숙 회장,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을 봉합하고 한미사이언스 지분에 관한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투자와 그룹 운영 방향 등을 둘러싼 이견이 커지면서 공동경영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법원은 지난 7월 29일 신 회장이 제기한 신청을 받아들여 임주현 부회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에 대해 100억원 규모의 가압류 결정을 내렸다. 임 부회장이 공동 의결권 행사 약정을 위반했다는 것이 신 회장 측 주장이다.
앞서 송 회장과 임 부회장, 라데팡스 측은 신 회장을 상대로 600억원대 위약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시니어케어 사업 투자와 관련해 신 회장이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상호 소송과 지분 갈등이 이어지면서 4자 연합이 사실상 와해 수순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의 문제이지만, 그룹 인사와 투자, 연구개발 및 사업 전략을 통해 핵심 사업회사인 한미약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3월 출범한 황상연 한미약품 대표 체제의 안정적인 정착도 주요 현안이다.
한미약품은 박재현 전 대표가 물러난 뒤 황상연 대표를 새로운 전문경영인으로 선임했다. 황 대표는 연구개발자 출신이 아니라 증권·투자 및 지주회사 경력을 갖춘 경영 전문가다. 한미약품이 축적한 신약개발 성과를 기업가치와 글로벌 사업 성과로 연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표 교체 과정에서 대주주 간 갈등과 임직원 반발이 표출된 만큼 황 대표 체제가 대주주들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성을 확보하고 조직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지배구조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달리 한미약품의 영업실적은 뚜렷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미약품은 2026년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 8602억원, 영업이익 1847억원, 순이익 135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4.4%,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4.6%, 54.2% 증가했다.
2분기에는 매출 4672억원, 영업이익 1311억원, 순이익 84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9.3%, 영업이익은 116.9%, 순이익은 95.5% 늘었다.
이상지질혈증 치료 복합신약 ‘로수젯’을 비롯해 ‘아모잘탄패밀리’와 ‘에소메졸패밀리’ 등 주력 처방제품이 성장했고,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판매 확대와 일라이 릴리 기술수출 계약금 인식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올해 상반기 한미약품의 원외처방 매출은 유비스트 기준 5616억원으로 집계됐다. 회사는 2018년부터 8년 연속 국내 원외처방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2분기 영업이익에는 릴리로부터 받은 기술수출 계약금이 반영됐다. 하반기에는 일회성 수익을 제외하고도 로수젯 등 자체 개발제품과 공동판매 품목이 안정적인 수익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릴리와 체결한 대형 기술수출 계약의 후속 성과도 중요하다.
한미약품은 지난 6월 일라이 릴리와 지속형 GLP-2 계열 단장증후군 치료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의 개발·제조·상업화를 위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총계약 규모는 최대 12억6000만달러로 당시 환율 기준 약 1조9000억원이다.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은 7500만달러, 약 1129억원이다.
대형 계약 자체는 한미약품의 연구개발 경쟁력과 독자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의 가치를 다시 입증한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총계약 금액에는 임상개발과 허가, 상업화 목표를 달성해야 받을 수 있는 단계별 기술료가 포함돼 있다. 릴리의 후속 임상 진척과 마일스톤 수령 여부가 기술수출의 실질적인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MSD에 기술수출한 MASH 치료제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의 임상 2b상 결과와 후속 임상 진입 여부도 주요 변수다.
국산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품목허가와 국내 시장 안착 역시 하반기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한미약품은 2025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품목허가를 신청하고 2026년 하반기 허가와 상용화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적응증 확대 임상 3상도 진행 중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시장에 안착하려면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글로벌 비만치료제와의 효과·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생산능력과 안정적인 공급, 보험급여 적용 가능성, 한국인 맞춤형 비만치료제라는 차별성, 출시 이후 실제 처방시장 침투 속도도 성패를 가를 요인이다.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은 국내 처방의약품 비중이 높은 한미약품에 또 다른 부담이다.
정부는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기본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낮추는 개편안을 확정했다.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일정 기간 완충장치가 적용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미약품도 약가 인하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한미약품은 제품 판매량 확대와 고수익 복합신약의 성장, 해외 매출 및 기술료 수익 확대를 통해 국내 약가 인하에 따른 수익 감소를 상쇄해야 한다.
한미약품은 현재 사업과 연구개발 측면에서는 최근 수년 가운데 가장 좋은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사업 성과와 별개로 그룹 지배구조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4자 연합의 법적 분쟁과 오너 일가의 법인카드 사용 의혹이 장기화하면 전문경영인 체제의 독립성과 기업 신뢰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한미그룹이 객관적인 사실 확인과 투명한 설명을 통해 내부 논란을 조기에 해소하고, 경영 역량을 신약개발과 글로벌 사업에 집중할 수 있을지가 향후 성장세를 좌우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