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영상의학회가 정부의 CT·MRI 재촬영 감소 정책에 대해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모든 재촬영을 일률적으로 줄이기보다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검사와 불필요한 검사를 정확히 가려내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동시에 조영제 사용량 감축과 환경오염 문제, 노후 고가의료장비의 품질관리 강화, 영상검사 수가체계 개선 등 영상의학계가 직면한 현안에 대해서도 정책적 보완을 촉구했다.
대한영상의학회는 9일 오후 12시50분부터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CT·MRI 재촬영 문제와 영상검사 품질관리, 조영제 사용 감축, 의료장비 관리, 영상검사 수가 개편 등을 설명했다.
“재촬영 26.8%…무조건 줄이는 정책은 안 돼”
정부와 국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다른 병원에서 동일 상병으로 CT를 다시 촬영하는 비율이 30일 이내 기준 26.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낭비와 환자의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대한영상의학회는 재촬영 감소라는 정책 방향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재촬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검사를 불필요한 검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환자의 상태 변화나 수술·치료 이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추적검사, 기존 영상의 화질이 좋지 않거나 필요한 부위가 누락된 경우 시행하는 추가검사는 정확한 진단과 환자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검사라는 설명이다.
학회 측은 “정책의 초점이 맹목적으로 모든 재검사 횟수를 줄이는 데 맞춰져서는 안 된다”며 “의학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불필요한 재검사를 정확하게 선별해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재촬영 사유 코드화·영상정보 공유…4대 정책대안 제시
학회는 불필요한 재촬영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재촬영 사유 코드 입력 의무화 ▲의료기관 간 영상검사정보 교류 활성화 ▲영상검사 품질관리 강화 ▲단순 영상 저장수가 신설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진료비 청구 단계에서 추가검사, 추적검사, 중복검사, 불필요한 재검사, 무관검사 등 재촬영 사유를 세분화해 입력하도록 하고, 처방 단계에서 재촬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의료기관 간 영상정보의 원활한 교류 시스템을 확대해 정보 부족으로 같은 검사가 반복되는 사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부 의료기관에서 촬영한 영상을 환자가 전원된 병원의 PACS에 저장·유지하는 데 대한 별도 보상체계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는 외부 영상을 올리고 보관하더라도 직접적인 보상기전이 부족해 불가피하게 재판독을 의뢰하거나 재촬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심평원, 11월부터 CT·MRI 촬영이력 실시간 확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오는 11월부터 CT·MRI 촬영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양급여내역 확인시스템’을 시범운영할 예정이다.
의료기관은 CT·MRI 촬영 전 환자의 최근 1년간 검사이력을 확인하고 실제 촬영 직후에는 관련 정보를 심평원에 실시간 제출하게 된다.
심평원은 제출된 촬영정보를 환자별로 누적 관리해 진료 시 의료진에게 제공하고, 촬영정보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면 심사 과정에서 진료비가 조정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대한영상의학회는 이 제도가 중복촬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필요한 재촬영까지 제한하지 않도록 재촬영 사유를 세분화하는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영제 사용 줄인다…“환자 안전 넘어 환경문제로 봐야”
이번 간담회에서는 CT·MRI 검사에 사용되는 조영제 문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대한영상의학회는 지난해부터 ESG 차원의 영상의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영상의 질은 유지하면서도 조영제 사용량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학회 측은 기술 발전으로 이전보다 적은 양의 조영제를 사용하고도 충분한 영상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기법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CT와 MRI 조영제 성분이 하천과 해양 등 환경에서 검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일부 국가와 국내 연구에서도 조영제 관련 성분이 환경에서 증가하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어, 장기적으로 환자 안전뿐 아니라 환경오염 차원에서도 사용량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자 측면에서도 조영제는 일부에서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진단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행 수가체계에서는 조영제 사용량이 줄어들 경우 의료기관이 경제적으로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어, 의료진이 조영제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려면 보상체계까지 함께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회 관계자는 “조영제를 적게 사용하는 것이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지만 현행 수가구조에서는 병원 측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다”며 정책적인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후 고가장비 품질관리 강화…“연식만으로 판단할 문제 아니다”
CT·MRI 등 고가의료장비의 품질관리 문제 역시 재촬영 감소와 직결된 핵심 현안으로 제시됐다.
노후 장비나 관리가 부실한 장비에서 생산된 영상은 화질이 떨어질 수 있고,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겼을 때 결국 같은 검사를 다시 받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수의료장비 품질관리 과정에서 장비의 사용연한을 평가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장비 구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단계적으로 감점을 적용하고 15년 이상 된 장비에는 최대 감점을 주는 방식이다.
다만 대한영상의학회는 장비의 연식만으로 품질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10년 된 장비라도 유지관리 상태와 부품 교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여부에 따라 실제 성능에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이유다.
학회 측은 전문가적 관점에서는 CT·MRI가 10년을 넘어서면 기술적 노후화가 체감되고 10~15년 사이 교체를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식만을 일률적인 퇴출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실제 영상 품질과 장비관리 상태를 종합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새로운 장비는 과거보다 적은 방사선량으로도 같은 수준의 영상을 얻을 수 있고, 10년 전에는 없었던 최신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노후 장비 관리에서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MRI 전문의 비전속 전환엔 우려
학회는 최근 MRI 품질관리 과정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전속근무 기준이 비전속 근무 방식으로 변경된 데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장비가 설치된 의료기관에 상시 근무하면서 촬영된 영상을 확인하고 방사선사에게 바로 피드백하는 체계가 품질관리의 중요한 요소인데, 비전속 근무로 바뀌면 현장 관리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학회는 비전속 전문의가 제한된 시간 동안만 근무하는 방식으로는 일주일 내내 시행되는 영상검사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상검사 수가 인하에도 반론…“장비와 의사 노동 구분해야”
영상검사 수가 조정도 이날 주요 현안으로 다뤄졌다.
대한영상의학회는 정부가 영상검사의 원가보상률 등을 근거로 수가 인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계기준이 시기마다 달라지고, 이미 수가가 인하된 이후의 상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2024년 영상검사 수가가 이미 인하됐음에도 원가 산정 과정에서 2023년 자료를 활용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학회는 영상검사가 단순한 비필수 의료행위가 아니라 대동맥질환과 중증응급질환 등 필수의료의 진단과 치료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장비 운용에 대한 보상을 조정하더라도 영상 판독과 환자 진료에 투입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노동에 대한 보상은 별도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회는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판독료와 영상의학과 전문의 가산료 등 의사 인건비에 해당하는 부분은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CR 2026 국제화 확대…2029년 AOCR 유치
대한영상의학회 정기학술대회인 KCR 2026은 9일부터 12일까지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다.
이번 학술대회 사전등록자는 약 2800명으로 이 가운데 외국인은 약 600명이다. 개막일 오전 현장 등록 인원도 약 1200명에 달했으며, 행사 전체 기간에는 수천 명의 국내외 영상의학 전문가가 참여할 것으로 학회는 전망하고 있다.
학회는 또 2029년 아시아·오세아니아 영상의학 학술대회인 AOCR 유치에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약 30개국이 참여하는 AOCR을 KCR과 연계해 국내 영상의학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삼성·LG부터 필립스까지…영상의료 산업계도 대거 참여
이번 KCR 2026 현장에는 학술 프로그램과 함께 국내외 영상의료 관련 기업들의 전시 부스도 대규모로 마련됐다.
국내 업체 가운데는 삼성과 LG 등 주요 기업들이 참여했으며, 해외에서는 필립스를 비롯한 다국적 의료기기 기업들도 전시 부스를 운영하며 최신 영상진단 기술과 장비를 선보였다.
CT와 MRI를 비롯한 영상진단장비는 물론 AI 기반 영상분석, 의료영상 소프트웨어, 디지털 헬스케어 등 영상의학과 연관된 기술들이 한자리에 소개되면서 이번 학술대회가 학술교류뿐 아니라 의료영상 산업의 최신 흐름을 확인하는 자리로도 꾸려졌다.
특히 학회가 이날 재촬영 감소, 노후장비 품질관리, 조영제 감축, AI 활용 등을 주요 의제로 제시한 만큼, 전시장 역시 영상의료 분야가 ‘더 많이 찍는 의료’에서 ‘더 정확하고 안전하게 찍는 의료’로 변화하고 있다는 흐름을 보여주는 현장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