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영칼럼/대한의사협회의 위기, 리더십 보다 더 큰 문제는 분열이다

  • 등록 2026.03.01 07: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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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린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안건은 부결됐다. 표결 결과는 반대 97표, 찬성 24표(기권 4표)였다.

이에 따라 의협은 김택우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 집행부 체제를 유지하며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대응하게 됐다.

이번 표결을 단순한 ‘재신임’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대의원들의 선택에는 두 가지 판단이 동시에 담겨 있다. 하나는 현 집행부의 한계에 대한 분명한 문제 제기이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의 조직 혼란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즉, 지도부에 대한 불만과 조직 안정의 필요성이 교차한 결과다.

이번 임총은 정부 압박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부 강경 기류가 비대위를 통해 현 집행부의 리더십을 약화시키려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회원들의 ‘피로감’이다. 지난 정부 시절과 비교해 현재 의료계의 투쟁 동력은 현저히 약해졌다. 장기간 이어진 갈등 속에서 회원들은 지쳤고, 현장은 소모됐다. 전공의들의 결집력도 과거와는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실제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적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학습된 경험’이다.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집행부를 탄핵하고 비대위를 구성하며 강경 투쟁에 나섰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기억이 회원들 사이에 축적돼 있다. 비대위는 상징적 결의의 표현일 수는 있어도, 결과를 담보하지는 못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의료계는 이미 여러 차례 지도부 교체와 비대위 체제를 경험했다.과거  탄핵과 비대위의 연속은 ‘강한 투쟁’을 상징했지만, 구조적 문제 해결로 이어졌는지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지도부는 바뀌었으나 갈등의 본질은 남았고, 그 과정에서 조직의 체력은 약화됐다.

이 반복 구조가 바로 의협의 ‘흑역사’다. 지도부 교체 자체가 해법이라는 사고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갈등을 내부로 되돌리는 결과를 낳아왔다.

김택우 회장은 임총을 앞두고 회원들에게 서신을 보내 의대 정원 문제를 충분히 막아내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지도자의 덕목은 완벽함이 아니라 책임성이다. 물론 사과가 곧 신뢰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는 출발선이 될 수 있다.

지금 의협의 가장 큰 위기는 특정 지도자의 역량을 넘어선다. 찬반의 극단적 대립, 강경과 온건의 이분법, 그리고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탄핵 논의 자체가 조직을 갉아먹고 있다. 외부와 싸우기 전에 내부에서 에너지를 소진하는 구조가 더 치명적이다.

의협은 14만 의사의 구심점이다. 구심점이 흔들리면 현장은 더 빠르게 붕괴된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장기전이며, 감정적 대응이나 상징적 행동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전략, 협상력, 정책 대안, 그리고 무엇보다 내부 결속이 필수다.
집행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당연하다. 그러나 견제와 붕괴는 구분되어야 한다. 건설적 비판은 조직을 단단하게 하지만, 반복적 권력 투쟁은 조직을 공허하게 만든다.

상당수 회원들이 말한다. 또다시 비대위를 세우기보다 현 체제 아래에서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성과를 요구하며, 책임을 묻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리더십을 무너뜨리는 대신, 조건부 신뢰 속에서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성숙한 대응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의료계는 이미 많은 시간을 내부 갈등에 소모했다. 그 대가로 무엇을 얻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분열은 정의로 포장될 수 있지만, 결국 힘을 분산시킬 뿐이다.

의협의 위기는 리더십 교체 여부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분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격한 결단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김택우 체제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조직이 더 이상 스스로를 소모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열은 쉽다. 결속은 어렵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에 조직을 지키는 길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에 있다. 이제 의협은 결정해야 한다. 내부를 향한 또 한 번의 투쟁인가, 아니면 단단한 결속을 통해 외부와 맞설 것인가.
노재영 기자 imph7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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