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원료의약품 해외 의존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해열제와 항생제 원료 수급 차질을 직접 경험하고도, 한국의 원료의약품 공급망이 여전히 중국과 인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지적 이후 보건복지부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통해 국내 제약사들의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그러나 해를 넘긴 지금, 구조를 바꾸는 후속 정책이나 제도 개선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조사는 있었지만, 변화는 없었다. 원료의약품 문제는 여전히 ‘현황 파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의료계 현안과 의대정원 논쟁에 밀려 또다시 후순위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본지는 국산 원료의약품 공급 부진의 구조적 원인을 짚고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회는 ‘자급률 11.9%…숫자가 말하는 대한민국 원료의약품의 위기’,2회는 외국의 원료의약품 정책과 ‘제약 소부장, 왜 국가 전략이 필요한가’,3회는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 확대를 위한 정책 대안’이다.
원료의약품(API)을 넘어 중간체·공정기술·장비까지 이어지는 제약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가 구조적으로 붕괴 직전에 놓였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료의약품 공급망 위기는 우연이 아니라 “전략 산업을 전략적으로 다루지 않은 정책의 결과”라며, 지금이 구조를 되돌릴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약 소부장은 API만의 문제가 아니다. API 앞단에는 중간체가, 뒷단에는 공정 기술·설비·분석 장비가 연결돼 있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주요 중간체의 70~90%를 해외에 의존하고, 고난도 합성 공정 기술은 글로벌 CDMO에 집중돼 있으며, 정밀 여과·결정화·정제 장비와 분석용 시약·표준품까지 수입 의존 구조에 묶여 있다. API 생산 능력을 키워도 앞뒤가 막힌 ‘반쪽짜리 국산화’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다. 대학과 출연연, 기업 연구소에는 세계적 수준의 합성·공정 기술 인력이 축적돼 있다. 문제는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다. 파일럿 단계까지는 성공해도 양산 전환 과정에서 자금과 확실한 수요가 없어 좌초된다. 초기 투자 비용은 크고 회수는 불확실한 반면, 실패 리스크는 전적으로 민간이 떠안는 구조에서 ‘기술은 성공하지만 사업은 실패’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해외 주요국은 다른 길을 택했다. 미국은 원료–중간체–공정–완제까지 전 주기를 패키지로 지원하고, 보건·국방 안보 차원에서 장기 구매 계약을 통해 민간의 실패 리스크를 정부가 흡수한다. 인도는 API뿐 아니라 중간체까지 보조금 정책을 적용하고, 클러스터 내 환경·폐수 인프라는 국가가 책임진다. 일본과 EU는 수익성이 아니라 ‘필수성’을 기준으로 국가가 유지 책임을 진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이들 국가는 제약 소부장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모든 원료를 국산화할 필요는 없지만, ▲항생제·해열진통제·응급의약품 등 필수의약품 원료 ▲대체 불가능한 핵심 중간체 ▲결정화·정제·연속공정 등 공정 핵심 기술만큼은 이익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유지해야 할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정책 전환 과제로는 ▲필수 원료 국가 지정제 도입 ▲장기 구매·최소 수익 보장 계약 ▲API–중간체–공정 통합 클러스터 구축 ▲약가 정책과 산업 정책의 분리 ▲보건안보 관점의 컨트롤타워 신설이 제시된다. 단기 약가 인하 논리가 공급망 기반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약 소부장은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국가 인프라다. 도로·전력·통신처럼 유지해야 할 기반이며, 단기 수익으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다음 위기에서 우리는 또다시 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왜 그때 준비하지 않았나.”
국산 원료의약품과 제약 소부장의 붕괴는 기업의 선택이 아니다. 그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이다. 다음회자는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 확대를 위한 정책 대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