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여성들이 받는 여성호르몬 치료는 유방암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호르몬 치료가 절실한 여성들까지 치료를 기피하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호르몬 치료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됐을 뿐 아니라, 여성호르몬 치료는 경우에 따라 유방암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여성건강계획(The Women’s Health Initiative)’이란 대규모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는 2011년 4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학 전문지인 미국 의학협회지(JAMA)에 발표됐다.
◆여성호르몬 치료의 유방암 위험 논란 왜 나왔나?
폐경 여성들에게 여성호르몬을 투여하면 안면홍조, 불면증, 땀, 불안, 신경과민 등 다양한 폐경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여성호르몬 치료가 시행된 것은 이미 오래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들의 유방암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주장들이 일부 의료계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미 국립보건원은 지난 1993년 총 2만 7500여명의 폐경 여성들을 대상으로 호르몬 요법에 따른 유방암 위험을 밝히기 위해 ‘여성건강계획’이란 방대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연구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됐다. 첫째는 자궁이 있는 폐경 여성 1만6608명(*편의상 Ⅰ그룹이라고 한다), 둘째는 자궁이 없는 폐경 여성 1만892명(Ⅱ그룹)이었다. Ⅰ그룹은 에스트로겐(천연 결합형 에스트로겐, CEE)과 프로제스토겐(메드록시 프로게스테론 아세테이트)을 병용 투여했고, Ⅱ그룹은 에스트로겐만 단독 투여했다. 자궁이 있는 여성들이 에스트로겐만 단독 투여하면 자궁내막증식증이 생긴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기간은 당초 8.5년으로 계획됐다. 하지만 연구 시작 5.2년 만에 Ⅰ그룹 여성들에게 유방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들에 대한 연구가 중단됐다. 이 사실이 2002년부터 매스컴에 잇따라 보도돼 ‘여성호르몬 치료의 유방암 위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 진행한 다른 연구에선 호르몬 치료, 유방암 위험 오히려 줄여
자궁이 있는 여성들의 유방암 논란 때문에 Ⅰ그룹 연구는 중단됐지만, 자궁이 없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Ⅱ그룹 연구는 예정대로 계속 진행됐다. 하지만 이 연구 역시 Ⅰ그룹 연구에 따른 유방암 위험성 논란 때문에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이탈하는 등의 문제점이 드러나 당초 예정됐던 8.5년을 1년 여 앞두고 7.1년 만에 연구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임상시험이 마무리된 뒤에도 폐경 여성들에 대해 추적관찰 등의 후속 연구가 계속돼 최종적으로 2009년 8월까지 총 10.7년 간 진행됐다. 이 연구 결과가 올해 4월 미국 의학협회지에 발표된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의 핵심은 Ⅰ그룹 연구와 정반대로 CEE 단독 치료가 유방암 위험성을 낮춘다는 것이다. 즉 Ⅰ그룹 연구에서는 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들이 치료를 받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유방암의 상대적 위험성이 약 25% 높았지만, Ⅱ그룹 연구에서는 상대적 위험성이 약 23% 감소했다. 이를 절대적인 숫자로 환산하면 약 0.1% 미만으로 미미하며, 인구 1만 명을 기준으로 양쪽 모두 약 8명 꼴이다.
◆ “호르몬 치료, 안심하고 받아도 된다”
전문가들은 “여성호르몬 치료의 유방암 위험성은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됐으며, 최종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여성호르몬 치료의 이익이 위험성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안심하고 받아도 된다”고 말한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윤병구 교수는 “2002년 여성건강계획의 일부 연구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일반인들은 마치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약물에 상관없이 모두 유방암에 걸리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는 분명히 오해”라고 말했다.
우선 이번 연구에서처럼 자궁이 없는 여성들의 경우, CEE 치료로 유방암 위험성이 오히려 줄었다. 자궁이 있는 여성들의 경우에도 실제로 폐경 증상 치료를 위해 호르몬을 장기간(5년 이상) 투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2년 이내로 호르몬을 투여하기 때문에 유방암 위험성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는 여성들은 유방암 정기 검진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 암을 조기에 발견해 완치(5년 이상 생존)할 확률도 매우 높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김정구 교수는 “미국에서 이뤄진 여성건강계획에서 사용된 약물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것들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약물 외에 유럽에서 수입된 약물과 국내에서 생산된 약물 등 다양하기 때문에 약물의 종류, 투여 방법 등을 잘 선택하면 유방암 걱정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박형무 교수(대한폐경학회 회장)는 “폐경 여성들이 여성호르몬 요법을 받을 때의 장점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며 “호르몬 요법은 50대 여성에서 폐경 증상 완화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심혈관 질환, 사망률 등을 낮춰준다는 연구들을 볼 때 장기적으로 의료비 절감이란 사회적 이익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호르몬 치료 Q&A
Q 호르몬 대체 요법(HRT)이란 무엇인가?
A 여성들이 폐경이 되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크게 줄어 생리가 없어지고, 각종 폐경 증상들이 나타나므로, 호르몬을 적절하게 투여하면 이 같은 증상들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개념은 이미 120여 년 전에 나왔다. 이에 따라 70여 년 전부터 실제로 호르몬 요법에 약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르몬을 이용해 젊음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시도됐고, 그 이후에 갱년기 증상 치료에 많이 사용됐다. 최근에는 호르몬 치료가 노화방지(anti-aging) 목적으로도 점차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호르몬 치료를 HRT(Hormone replacement therapy)라고 하는데, 이는 ‘호르몬 대체 요법’ 또는 ‘호르몬 요법’이라는 의미다.
Q 폐경이 되면 여성호르몬이 0으로 떨어지나?
A 그렇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경우 가장 활발하게 분비될 때를 100으로 할 때, 폐경 이후에는 약 30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보면 된다.
호르몬 수치는 계속 100을 유지하다가 폐경이 되면서 갑자기 30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가임기에서 폐경으로 옮겨가는 시기인 40대(이를 이행기라고 한다)에는 불규칙하게 수치가 변하다가 폐경이 되면서 30 이하로 내려가는 것이다.
이처럼 호르몬이 30 이하로 떨어지면서 안면홍조, 발한, 신경과민, 불면증, 우울증, 질 건조증, 성교통, 불안 등 다양한 폐경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처럼 여성호르몬이 줄면서 폐경 여성들이 겪는 각종 증상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약물로 된 호르몬을 투여해, 호르몬 부족분을 보충해주는 것이 호르몬 치료이다. 즉, 호르몬 치료의 개념은 ‘조정’이라고 볼 수 있다.
Q 폐경 여성들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지나?
A 폐경으로 여성호르몬 수치가 뚝 떨어지면 고혈압 발병률이 증가한다. 에스트로겐은 혈관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이 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도 올라간다. 연구결과들을 보면 폐경 여성들의 심혈관 질환 위험도는 폐경 전 여성에 비해 2~4배 높은 것으로 나와 있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등 심혈관 질환은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10배 이상 높다. 하지만 여성들도 폐경 이후에 고혈압, 고지혈증 등에 의한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급속도로 높아져, 75세 이상에서는 전체 관상동맥 질환 환자의 절반 이상(약 55%)이 여성일 정도로 많다.
에스트로겐을 보충해주면 이 같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Q 여성호르몬은 합성 약물인가, 천연 약물인가?
A 여성호르몬의 생화학적 구조는 다 밝혀져 있다. 따라서 화학적 합성도 가능하다. 하지만 화학적 합성 약물보다는 천연 에스트로겐이 많이 쓰인다.
특히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처방되는 것이 천연 결합형 에스트로겐(conjugated equine estrogens, CEE)으로 1942년 미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CEE는 임신한 말의 뇨(尿)에서 여러 단계의 추출 과정을 거쳐서 분리 정제한 천연 기원의 에스트로겐 제제로서 대표적인 10여 종의 에스트로겐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CEE 외에도 다양한 약물들이 나와 있다.
에스트로겐 외에 대표적인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토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국내에는 미국 약물뿐 아니라, 유럽에서 개발된 호르몬도 수입되고 있다. 또한 CEE를 포함한 일부 약물은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효과와 부작용은 약물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 즉 경구 투여나 피부를 통한 투여(젤이나 패치 등) 등에 따라서도 효과와 부작용에 차이가 날 수 있다.
Q 여성호르몬 치료는 모든 폐경 여성들이 다 받을 수 있나?
A 여성호르몬은 전문 의약품이기 때문에 의사가 진료한 뒤 처방을 받아야 투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1차로 의사가 진료할 때 여성호르몬 치료에 적합하지 않은 여성들은 치료 대상에서 제외한다. 대표적으로 유방암이나 자궁내막암 등을 앓았거나, 간 질환이 있는 여성들은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도록 하라는 가이드 라인이 만들어져 있다.
그 외의 폐경 여성들은 대부분 호르몬 치료를 받을 수 있다.
Q 유방암 위험에 대한 유관 학회의 견해는?
A 호르몬 약물에 따라 유방암 위험이 다르다는 것이 2011년 세계폐경학회, 2010년 북미폐경학회의 견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