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작성하는 사전의료의향서와 의사가 환자와 함께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의 활성화를 통해 환자 가족이 아닌 환자 본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성숙한 임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2월 4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주년을 맞아 논평을 내고 이같이 주장했다.
환자단체는 "지난 1년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됨에 따라 의료현장에서는 법률과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환자가 임종기에 접어들지 않았는데도 환자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의사에게 요구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또한 임종기 환자의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치료비·상속·보험금 등 경제적 동기로 가족 전원이 합의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이러한 필생명 경시 풍조 조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연명의료결정제도 남용 방지책은 필요하다."며 일정기간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한 후 성숙한 임종문화가 정착되어 남용 우려가 없어졌을 때 그때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생전에 건강할 때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수는 115,259명으로 집계됐다. 의사가 환자 본인의 의사를 물어서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16,366명이다.
사전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수 실적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 성적표 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된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수는 290개에 불과하고, 이 중 의료기관 수는 173개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연명의료와 관련성이 가장 높은 곳이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모두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환자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또 "연명의료결정 이행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내 윤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전체 3,337개 대상 의료기관 중에서 윤리위원회 등록기관은 5%(168개)에 불과하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다음으로 임종기 환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요양병원의 경우 1,526개 대상 의료기관 중에서 22개(1.4%)만이 윤리위원회 등록기관이다.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의료기관을 상상할 수 없듯이 연명의료결정을 시행할 수 없는 의료기관도 상상할 수 없다. 연명의료도 의료행위의 일부라면 임종기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모두 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규정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지난 1년 동안 연명의료결정을 이행한 임종기 환자는 총 36,224명이다. 이 중 사전의료의향서에 근거한 경우가 293명(0.8%)이고, 연명의료계획서에 근거한 경우가 11,404명(31.5%)이다.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한 경우가 11,529명(31.8%)이고,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한 경우가 12,998명(35.9%)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기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환자 본인의 의사를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에 의한 연명의료결정 이행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한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초기임을 고려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근거한 경우가 적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연명의료계획서’에 근거한 경우의 비중이 낮은 것은 아쉬움으로 지적했다.
환자단체는 논평에서‘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가 없어서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시행되는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한 경우(31.8%)와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한 경우(35.9%)가 총 67.7%로 전체 연명의료결정 이행 규모에 비해 너무 높다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특히, 남용 우려가 높은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한 경우가 31.8%로 걱정스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자단체들도 앞으로 치료환경과 함께 임종환경도 환자 중심으로 정착되도록 관련 정책·제도·법률을 개선하고, 대국민 인식개선 및 홍보활동도 적극 전개할 계획이다. 특히, 우리 사회가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문화가 조속히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웰다잉(Well-Dying)법·존엄사법 등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 2월 4일 시행 1주년을 맞았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우리나라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 여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한 지 21년 만이고, 2008년 일명 ‘김할머니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 만에 제정되었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연명치료중단 제도화 관련 사회적 협의체」와 2012년 「무의미한 연명치료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두 번에 걸쳐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였다. 그 결과 ‘특별위원회’는 2013년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2015년 국회에서 김재원 의원이 연명의료결정법을 대표발의 했으며, 2016년 2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제정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위해 의료계·윤리계·법조계·종교계·시민단체·환자단체 등이 중요 쟁점에 있어서 서로의 이해와 관점이 달라 치열한 논쟁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일부 논점은 끝내 합의를 하지 못하는 등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8년 2월 4일 시행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시행 두 달도 안 된 2018년 3월 27일 개정되었다.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하거나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해 연명의료결정을 예외적으로 할 수 있는 경우의 가족의 범위를 기존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모두 없는 경우 형제자매’에서 ‘배우자, 1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 배우자·1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 2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 모두 없는 경우 형제자매’로 변경되었다.
연명의료결정 대상인 의학적 시술의 범위도 기존 4가지(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에서 3가지(체외생명유지술, 수혈, 승압제 투여)가 추가되었다.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이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말기환자 진단 후 호스피스전문기관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있는 환자인 경우 담당의사 1명만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였다. 의료현장의 불편사항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던 환자가족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올해 3월 28일부터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