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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총장 자서전/68/미국 유학길에 오르다

15일만에 미국 서남부의 롱비치항에 도착

당시 대전보건소는 미국 정부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미국식 예방의학 제도를 도입하여 예방주사, 모자보건, 전염병 예방 및 치료를 주로 실행하였다. 나는 대전보건소의 첫 소장으로 근무하던 중 마침 미국 병원에 인턴 신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미국의 잘 발달된 선진 의학을 배워올 수 있다는 벅찬 기대에 정성스럽게 서류를 갖추어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마음을 졸이며 그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마침내 뉴욕에 있는 세인트 프란시스 병원의 초청을 받게 되었다. 당시는 해외유학을 가려면 정부에서 시행하는 해외유학 자격시험을 보아야 했는데 나는 도미 유학의 꿈을 안고 친구들 몇 명과 저녁이면 토니 박사라는 선교사로부터 영어 교습을 받아왔기 때문에 외무부에서 유학생들을 상대로 치르는 영어시험에 쉽게 합격을 할 수 있었다.

   

김희수총장은 미군 LST를 타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나는 결혼해서 아내는 물론 딸 용애(당시 3세)까지 있는 몸이었다. 요즘 세상에는 가족이 함께 유학길에 오르는 경우도 많지만, 그때는 단신 유학조차 꿈같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간다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유학을 준비하면서도 아직 신혼이라 할 수 있는 아내와 재롱이 한창인 딸아이와 헤어져 몇 년 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유학이란 언제 다시 나에게 주어질지 모르는 크나큰 행운이자 기회였기 때문에 그같은 속마음을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럴 때 집안걱정은 하지 말고 가서 잘 배우고 오라는 처의 격려는 큰 위안이 되었다. 그때 의연하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처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당시 한국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려면 지구의 반 바퀴나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가서 다시 서부에서 기차를 타고 미 대륙을 건너 동부 끝까지 가야 하는 복잡하고 머나먼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유학을 주선해준 한미재단에서 마련해준 배편으로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의 롱비치로 가서 기차로 미 대륙을 횡단, 뉴욕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1956년 6월 말, 나는 인천항 부두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환송을 받으며 일행 7~8명과 함께 미군 수송선을 타고 장도에 올랐다. 그 큰 배가 섬들 사이를 용케도 잘 빠져나가 서해안을 따라 힘차게 내닫는 것이 신기했으며 목포에 이르는 사이 아기자기한 우리 나라의 바다가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가 탄 배는 한국전쟁 때 미군을 실어오고 일부 군인을 대만, 오키나와에 수송하는 배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남쪽으로 향해, 대만 수도 타이페이의 외항인 기륭(基雄)항에서 일박하고는 다시 동쪽으로 항해를 계속, 오키나와에 잠시 기착했다.

 

오키나와는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몹시 후덥지근한 더운 여름 날씨에, 옛날식 일본 건물과 기모노 옷을 입은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 배는 다시 오키나와를 출발하여 망망한 태평양 횡단에 나섰다. 망망대해를 지나며 행여나 섬이라도 하나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 보았지만 검푸른 물결과 이따금씩 눈에 띄는 갈매기 외에는 둥그스런 수평선만 끝없이 펼쳐져 난생 처음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인천을 떠난 지 15일만에 미국 서남부의 롱비치항에 도착했다. 당시의 롱비치항은 인천항과 비슷한 규모로 도크까지 배가 입항할 수 있었는데 항구는 몹시 지저분했다. 그러나 전란중인 한국에서 벗어나 첫 경험한 외부세계인 롱비치는 전체적으로는 너무도 아름다운 도시였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휘황찬란한 롱비치의 밤경치였다.

 

그무렵 서울에는 대중버스조차 그리 많지 않은 데다 가정용 전기마저 시간제로 배전할 때여서 저녁이면 컴컴한 암흑 세계였는데, 롱비치의 야경은 정말 휘황찬란했고 거리 가득 명멸하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또 1956년 세계미인선발대회가 때마침 그곳에서 개최되고 있었는데 해군에 근무하다 미국 유학에 나섰다는 홍 교수는 여유있게 미인대회를 구경한다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매우 부러워했다.

우리 일행은 롱비치에서 각자의 행선지로 흩어졌고 나는 우석의대의 서 교수와 기차를 타고 뉴욕까지 동행했다. 광활한 미대륙을 사흘낮 사흘밤을 달리고 또 한나절을 더하여 3박 4일 동안 횡단하여 종착역인 뉴욕 맨해튼 42번가에 있는 그랜드 스테이션(Grand Station)에 도착했다.

 

며칠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땅은 농작물도 심어져 있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한국에선 공터만 있으면 한 뼘의 밭이라도 일구려고 애를 쓰고, 땅이 없어 높은 산비탈까지 논으로 밭으로 경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볼 때 신이 계시다면 너무나 불공평한 처사라고 느꼈다.

 

석탄의 경우도 우리 나라 같으면 지하 수백 미터씩 갱도를 파내려가 어렵게 캐내는 데 비해 이곳에선 석탄으로 뒤덮인 산이 지표에 드러나 있어 지하로 파내려갈 것도 없이 지상에서 퍼담고 있었다. 이런 광경들을 보며 서 교수와 나는 식사는 거의 역구내에서 해결했다. 햄버거도 먹고 간혹 핫도그도 사 먹으며 충격 속에 미대륙 횡단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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