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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보령제약 그룹 회장 자서전/30/선진국제약업계가 준 충격과 위기감

선진국의 약업계가 내게 준 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특히 신약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는 것을 목격한 후 우리의 뒤늦은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연구부서의 신설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1970년 12월에 학술부(學術部)가 신설되었다. 연구하지 않는 제약기업은 머지않아 그 존재 가치를 잃을 것이 뻔했으므로 신설된 학술부는 연구하는 기업,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기업으로서의 보령제약을 상징하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1967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연구과정에서 경영 전반에 관한 이론을 접한 것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우리 사회는 경제개발계획이라는 큰 구도 안에서 한창 산업사회로 진전되어 가는 과정이었는데, 고대 경영대학원은 그런 우리 사회와 한국경제 전반에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조중훈 대한항공 회장 등 경영자들과 각 언론사 간부 등 사회 각계의 인사들과 함께 안암동 캠퍼스에서 함께 공부하며 기업인으로서의 자세와 꿈을 키워갈 수 있었다.


70년대를 앞두고 보령제약은 창업 6년만에 억대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특히 이 시기를 전후하여 나는 보령제약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현 체제의 정비와 새로운 목표설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우선 생산품목을 생약제제에 치중한다는 기존의 구상을 거듭 확인하고 지금까지 병행해서 생산해오던 약전품 가운데 일부 치료제를 제외한 전 품목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동영제약을 인수한 이후 초기 제약회사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해 오던 약전품들은 수지 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공장의 생산성에도 많은 지장을 주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생약전문메이커로 위상을 굳힌 만큼 차제에 사세(社勢)를 재정비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고, 그 구체적인 방안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신약의 개발이었다.
신약개발을 위해서는 일본과의 기술제휴를 통한 생약제제 생산에 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품목을 선정할 필요가 있었다. 아울러 기술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데는 당시 국내 제약업계의 동향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당시 업계는 한마디로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를 맞고 있었는데, 억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생산업체만 해도 21개소에 이르렀다.


이렇게 규모가 큰 생산업체가 많이 증가해 있다는 것은 제약업체들이 그 어느 때보다 특정 의약품에 집중적인 투자와 판촉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따라서 생산에서 영업에 이르기까지 품목별로 뜨거운 경쟁구도가 펼쳐지고 있었고,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이 바로 신약개발임을 나는 확신했던 것이다.

김승호 회장은 일본 제약인들과 함께 구미 약업계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뒷열 오른쪽에서 8번째가 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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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 때마침 그 확신을 앞당겨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의 제약 관련 전문지인 약사시보사(藥事時報社)가 제 12회 구미(歐美)의약품업계 시찰행사를 주최하면서 나를 초청했다.


약사시보사는 유럽과 미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일본 의약산업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매년 업계 중진들을 시찰단으로 파견하는 행사를 주관해오고 있었는데, 한국의 약업인 대표로 나를 초청한 것이었다.


나는 서울을 출발하여 인도를 거친 다음 이태리, 프랑스, 덴마크 등 유럽 8개 주요국가와 미국의 약업계를 둘러본 뒤 귀국했다. 이때까지 세 차례의 일본방문과 동남아시찰의 경험만 있을 뿐 세계를 일주하면서 선진국의 약업계를 둘러볼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이 해외 출장이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한 경험이었다. 특히 세계의 약업계가 앞 다투어 새로운 기술개발과 의약품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이를 기반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음을 직접 목격한 나는 적지 않은 충격과 동기부여를 받았다.


이 때의 경험 중에서도 내게 가장 유익했던 것은 기술제휴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으며, 실제로 의약 기술면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유수의 제약업체들과 실제적인 제휴상담을 할 수도 있었다. 그 가운데 스위스 메디알사와 프랑스 비오테락스사, 그리고 미국 브리스톨 마이어즈사와는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다.


선진국의 약업계가 내게 준 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특히 신약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는 것을 목격한 후 우리의 뒤늦은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연구부서의 신설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1970년 12월에 학술부(學術部)가 신설되었다.


연구하지 않는 제약기업은 머지않아 그 존재 가치를 잃을 것이 뻔했으므로 신설된 학술부는 연구하는 기업,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기업으로서의 보령제약을 상징하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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