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를 하면 머리가 나빠지나요?”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씨(37세)는 최근 걱정거리가 생겼다. 하나 밖에 없는 딸아이가 수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자체도 그렇지만 얼마 전 직장 동료가 했던 “전신마취를 하면 아이의 머리가 나빠진다”는 말이 떠올라 더 큰 고민이다. 인터넷에는 전신마취 부작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대학 진학률 1위며 한 해 국가 교육 예산에 맞먹는 22조원이 사교육에 들어간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신마취의 위험성은 부모들에게 큰 관심거리다. 그렇다면 전신마취를 하면 머리가 정말로 아이의 머리가 나빠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다. 실제 전신마취에 쓰이는 약제가 아이의 학습능력 장애 및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같은 증상의 발생 위험률을 키운다는 연구결과와 논문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아이의 뇌가 한참 발달하는 상황에서 전신마취를 하면 마취제가 뇌로 공급되는 산소를 막기 때문에 뇌 기능이 떨어진다는 내용들이다. 더구나 이러한 증상은 단 한 번의 전신마취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작년 9월 캘리포니아 대학은 한 살이 되기 전 전신마취 경험이 있는 28명의 아이들의 기억능력을 마취 경험이 없는 같은 나이·성(性)과 짝지어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다양한 테두리 색상과 위치가 다른 그름을 보여준 뒤 기억해 내는 실험인데 그 결과 마취 경험이 있는 아이들의 점수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20%나 낮았다. 공간인식 테스트에서도 마취 경험이 있는 아이들의 점수가 21% 떨어졌다.
콜롬비아 대학도 비슷한 방식의 연구를 진행했는데 3살 이전의 전신마취도 언어 구사 및 인지 능력을 현격히 떨어뜨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3살 이전 아이들은 추리 능력 장애의 발생 가능성도 또래 아이들보다 1.73배나 높았다.
전신마취가 왜 아이들의 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전신마취에는 대부분 흡입마취제와 아산화질소(Nitrous oxide)가 사용되는데 이들 제제는 두뇌의 산소결핍증을 일으켜 일시적 기억상실, 환각, 환청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성장기 어린이의 뇌는 시냅스(synapse)를 포함해 주요 신경회로들이 생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전신마취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시냅스는 수많은 신경세포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통로다. 이 시냅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기 쉽다. 시냅스가 저하되면 뇌 기능이 전체적으로 위축,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서울브레인신경과 이일근 원장은 “아이들의 경우 작은 수술이라도 참지 못하고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신마취는 분명 발육 상태의 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위험성과 실효성 사이에서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생명을 다투는 수술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전신마취가 아닌 수면마취나 부분 마취로 대체가 가능한 진료는 전신마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면서 “아이들 마취는 수술 결과 자체도 그렇지만 이후 발달과정까지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