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만성질환 부담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2025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는 한국 사회가 이미 ‘장수 사회’가 아닌 ‘만성질환 사회’에 진입했음을 수치로 분명히 보여준다.
-기대수명 OECD 상위권…그러나 사망의 10명 중 8명은 만성질환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7세로, 2000년 이후 약 7.7세 증가했다. 남녀 모두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뒤에는 뚜렷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2024년 전체 사망자 가운데 비감염성 질환(NCD)으로 인한 사망은 28만2천여 명으로, 전체 사망의 78.8%**를 차지했다.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알츠하이머병·당뇨병·고혈압성 질환 등 만성질환이 사망 원인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 순위는 전년과 동일하다. 감염병 중심의 사망 구조에서 이미 완전히 벗어난 셈이다.
-진료비 10원 중 8원, 만성질환에 쓰인다
만성질환의 부담은 의료비 지출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4년 비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진료비는 90조 원, 전체 진료비의 80.3%에 달했다. 특히 순환계 질환 진료비는 14조 원으로 암 진료비를 넘어섰고, 단일 질환 기준으로는 고혈압(4.5조 원)과 2형 당뇨병(3.2조 원)이 최상위를 차지했다.
이는 만성질환이 더 이상 일부 고령층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체계 전반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초고령사회 진입, 의료비 격차는 더 커진다
2025년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3%**에 이르며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자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551만 원으로, 전체 인구 평균(226만 원)의 2.4배에 달한다.
고령화 자체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고령자 다수가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는 ‘복합질환 구조’**가 보편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향후 의료비 증가 속도가 단순한 인구 증가를 훨씬 초과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혈압·당뇨병, ‘치료는 늘었지만 조절은 부족’
주요 만성질환 관리 지표는 양면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고혈압 유병률은 2023년 20.0%로 다소 감소했지만, **조절률은 50.4%**에 그쳤다. 즉, 고혈압 환자 2명 중 1명만 목표 혈압에 도달하고 있다.
당뇨병 역시 유병률은 9.4%로 큰 변화가 없으나, **조절률은 24.2%**에 불과하다. 당뇨병 환자 4명 중 3명은 혈당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치료 접근성보다 지속 관리·생활습관 개선·통합 관리체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반면 고콜레스테롤혈증은 약물치료자의 조절률이 86.2%로 높아, 적절한 치료 연계만 이뤄진다면 관리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만·흡연·음주…만성질환의 ‘근본 원인’은 여전
만성질환의 뿌리인 건강위험요인 지표는 여전히 정체 상태다.
성인 비만 유병률은 37.2%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흡연율은 2023년 오히려 증가했다. 특히 액상형·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호흡기·심혈관 질환 부담을 키울 수 있는 위험 신호다.
고위험 음주율은 10년째 12~14% 수준에서 정체돼 있고, 유산소 신체활동 실천율은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는 만성질환이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환경과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치료 중심에서 예방·지역 기반 관리로 전환해야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이번 보고서를 “국가 차원의 만성질환 기초 자료”라고 규정하며, 지역 맞춤형 보건정책 강화를 강조했다. 이는 향후 정책 방향이 병원 중심 치료에서 지역사회 기반 예방·관리 체계로 이동해야 함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과제로 ▲만성질환 통합관리 강화 ▲일차의료 중심 지속 관리 ▲생활습관 개선을 위한 사회적 개입 ▲지역 간 건강 격차 완화를 꼽는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덜 아프게, 덜 부담스럽게 사는 사회’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5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은 이미 만성질환을 외면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으며, 지금의 대응 수준으로는 미래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경고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늘어난 수명을 건강하게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