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노환규회장 하면 투쟁,단식,강경 등 강한 이미지의 소유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만나보면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묻어나고 진한 인간미가 흐른다.
그래서 젊은 의사들이 노환규회장의 리더쉽에 반하고 좋아하는지 모른다. 노회장의 성품은 논어에 나오는 "지지위 지자요.부지위 부자가 즉 지자니라."를 빼어 닮았다.
'옳은 것은 옳다고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수 있는 용기는 그리 쉽지 않다.2일 오후 2시 의협 3층 동아홀에서 개최된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노회장은 눈치 보지 않고 거침 없는 화법으로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가감 없는 견해를 밝히고, 대안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노회장은 특히 지난해 투쟁은 투쟁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단호히 못박고 투쟁을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유보한 것은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진것이며, 1월중에 7개 요구사항에 대해 현정부와 협상을 벌이겠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경우 '협상 결렬'로 간주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따라서 1월말까지 구체적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이후에는 새정부와의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노회장은 " 아시다시피 새누리당의 의료정책이 구체성이 없어 좋을수도 있고 나쁠수도 있어 협상 결과를 예단하기는 무척 어렵다"며 조심스런 모습을 보였다.
노회장은 또 협회의 모순된 구조 개편이 시급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하고 "빠른 시일안에 직원들이 일하는 구조로 조직을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회장은 의협 직원이 140이고 임원이 20명인데 의사협회는 "의사가 일을 해야 하는 굴러가는 잘못된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고 지적하고 "협회 직원을 많이 활용하는 쪽으로 조직을 개편하겠다"고 덧붙였다.
노회장은 아울러 정관을 개정해서라도 상근 의사수를 늘려나가겠다고 말하고 편법은 아니지만 전문위원과 자문위원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노회장은 또 리베이트 문제와 성분명처방에 대한 의사협회의 공식 입장 및 의사정원 동결등과 관련 자료를 보지 않고 통계자료 등을 인용하면서 소상하게 답해, 의협 수장 다운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노회장은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과 관련, 취지는 동의하지만 집행 과정이 잘못돼 제약사는 제약사대로 어렵고,의사들은 범죄인 취급 받는 모순된 결과를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오는 2월 중 공청회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회장은 "리베베이트가 제약사의 생존수단이었던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하고 "국내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어렵게 신약을 개발하지 않아도 이익구조가 좋은 카피약을 만들어 리베이트 제공을 통해 쉬운 영업을 전개해왔다"고 질타했다.
따라서 노회장은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고 있는 리베이트의 '잘못된 힘'을 뿌리 뽑고 제약회사들이 경쟁력을 갖고 신약개발을 할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전제하에 쌍벌제 제도가 도입되고 시행 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좋은 제도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도 말했다.
노회장은 "쌍벌제가 시행되었다고 리베이트가 근절되었냐"고 반문하고 "이를 근절하는 근본적 방안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제약회사들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경쟁력 다지기의 첫번째는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햐하고 그다음에는 이를 토대로 신약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만약 합병을 반대하거나 경쟁력 제고에 소홀한 제약사의 경우 약가 인하등을 통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압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가 인하와 관련 노회장은 "일괄약가 인하로 인해 리베이트 근절의 물꼬를 터 놓았지만 한번에 큰 폭의 약가 인하는 타격을 주는 만큼 점진적인 약가 인하를 통해 리베이트를 줄수 없을 정도로 숨통을 조여야 한다"고 말하고 " 얼마전 한 제약회사의 임원을 만나 현안을 논의 하는 과정에 '점진적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현수준에서 약가를 50%까지 인하해도 생존할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하"고 약가 인하를 통한 리베이트 근절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노회장은 생동성 시험의 부실과 관련 의협이 주도적으로 검증할 필요를 느끼고 있으며 구체적 사항은 조만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과 관련 노회장은 '말도 안된다'는 표현으로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본다면?
정신없이 달린 한 해였습니다. 당선 직후, 취임 이전부터 만성질환관리제와 의료분쟁조정법 등이 시행되었고 총선이 있었으며 취임 이후에는 포괄수가제 저지와 의료수가 협상의 결렬에 따른 대정부 투쟁, 그리고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 등 쉼없이 달려온 한 해였습니다. 저도, 회원님들도 모두 지치도록 뛰었던 한 해로 기억합니다.
2012년은 숨가쁘게 달리면서 의료계와 의료제도의 후진을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고 자평합니다. 그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의료계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여러 정책들과 법안들이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며, 정부가 의료계를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후진을 멈추었다는 것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발판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뭐니뭐니 해도 7월 1일 포괄수가제 반대를 위한 수술연기 결정의 시행 이틀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결정된 6.29일의 철회(실제로는 수술연기결정에 대한 조건부 연기)결정이었습니다. 회원들의 실망과 투쟁의 동력 손실을 우려했는데 결국 그 예상대로 우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당시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여전히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의협회장에서 당선된 순간으로 짐작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37대 의협회장을 뽑는 선거에서 2차 투표로 가지 않고 1차에서 과반수를 넘는 득표로 당선이 확정된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곧 크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렸습니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10월 7일 3만명의 회원들과 회원 가족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우며 행사에 들어오시는 것을 바라보던 순간이었습니다. 하나의 뜻으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감동적인 순간이었고 덕분에 제1회 전국의사가족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습니다.
- 2012년 투쟁에 대해서
2012년 투쟁은 대정부 투쟁을 표방하였지만, 잘못된 의료제도를 방치한 것에 대한 정부의 책임뿐 아니라 의사들의 책임과 근본적인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환기시킨 것으로서 의료계 내부의 자구적 노력의 필요성에 대한 환기 의미가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가시적인 결과물은 있어야 합니다. 만일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투쟁은 가까운 시기에 다시 재점화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부에 대한 압박이 아니라 의사와 국민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정부도 의료제도의 문제점과 열악한 의료환경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있으므로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2013년 투쟁은 계속될 것인가?
올바른 의료제도를 세우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투쟁으로 규정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투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비대위도 존속될 것입니다. 다만 조직의 확대시기는 상황에 따라 조정할 예정입니다.
-1월 건정심 복귀는?
건정심의 기능과 구조적인 문제가 지적되고 환기되는 상황이므로 정부도 운영방안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복귀할 수 있습니다.
-건정심 개선을 담은 건강보험법 개정안에 대한 전망은?
앞장서서 수고하신 박인숙의원과 공동발의에 참여해주신 의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 30명이 공동발의에 참여한 것은 고무적이라 생각하며 대선 전, 두 대선 후보와 오제세 보건복지위원장님도 건정심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시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적극 공감하신 바 있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새해의 전반적 운영방안은?
새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등 국민에게 경제적 진료를 강제하지 않고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려 한다는 점에서 의료계와 방향이 일치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보건의료정책의 각론이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MB정부와 유사점이 많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동안 정부와 냉각기를 가졌지만, 앞으로 활발한 소통을 통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책임자와 조율해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투쟁조직은 항상 동원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것입니다. 과거처럼 정부가 또 다시 의료정책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단체행동 등 투쟁은 언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의 입에서 '투쟁'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현실 자체가 비극이며, 궁극적으로는 이 단어가 의사들의 입에서 사라질 날을 기대합니다.
- 2013년 예상되는 변화는?
첫째, 의협이 의료정책의 수립에 있어 수동적인 입장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선도적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예컨대 건강보험재정을 위협하는 고령화와 이에 따른 의료비 급증은 정부만의 고민으로 남겨질 문제가 아닙니다.
건강보험재정의 효율적 사용 등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부와 함께 숙제를 풀어나갈 것입니다. 둘째,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의료계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참여를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던 의료계의 내부적인 조직체계를 재정비함으로써 발전지향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노력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 모든 노력들이 합쳐질 때,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꾸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의료계의 전진이 비로소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