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주변이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럼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 해 동안 100만 명 이상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지럼증은 성인 4명 중 1명이 경험할 정도로 흔한 증상이지만,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편이다. 그러나 뇌출혈, 뇌경색처럼 심각한 원인 질환이 숨어있을 수 있어 면밀히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 체한 증상과 비슷한 전정신경염
윤모(65·여) 씨는 3일 전 평소와 같이 수영하던 중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을 느꼈다. 말도 안 나오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윤 씨는 죽을 것만 같았다고. “체한 줄 알았어요. 계속 구토하고 어지럽고....” 주변이 빙글빙글 돌고 땅으로 꺼지는 느낌에 그대로 주저앉은 윤 씨. 서둘러 수영장에서 나와 소화제를 먹어봤지만, 증상은 그대로였다. 어지럼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어 응급실을 찾은 윤 씨. 검사 결과 ‘전정신경염’을 진단받았다.
어지럼증은 크게 ‘중추성’과 ‘말초성’으로 구분한다. 대뇌, 소뇌, 뇌혈관 등 뇌 구조·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어지럼증은 ‘중추성’, 귀 질환, 전정신경 이상, 빈혈 등으로 발생한 어지럼증은 ‘말초성’에 해당한다. 윤 씨가 경험한 전정신경염은 말초성으로, 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자칫 얕보기 쉽다. 하지만 전정신경은 8번째 뇌신경인 전정와우신경의 일부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녹색병원 신경과 김진옥 과장은 “전정신경염은 신경에 생기는 염증으로 일반 감기와는 다르다”며 “염증으로 인한 신경 손상뿐 아니라, 염증이 사라져도 신경이 마비된 상태로 어지럼증이 지속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귓속 내이에는 몸의 평형을 감지하는 ‘전정기관’이 있다. 여기서 수집한 평형감각 정보는 전정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데, 이러한 전정신경에 염증이 발생하면 △심한 어지럼증 △구역 △구토 △식은땀 △안진 △보행장애 등이 발생한다. 주로 환절기 면역력 저하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으로 갑자기 발생하며, 간헐적으로 어지러운 이석증과 달리 계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 저절로 낫는 병? 하루라도 빨리 치료할수록 예후 좋아
김진옥 과장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전정신경염 증상은 대부분 일주일 1~2주 내로 호전되는 까닭에 ’저절로 낫는 병‘으로 여기기 쉽다”며 “하지만 간혹 2주 이상, 길게는 몇 달간 증상이 지속될 수 있어 진단 후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느 질환과 마찬가지로 전정신경염 역시 일찍 치료할수록 회복이 빠르다. 전정신경염은 병력 청취와 문진, 신경학적 진찰 후 MRI, 비디오 안진검사, 혈액검사 등을 뒷받침해 진단한다. 검사 결과 전정신경염으로 확인되었다면 ‘전정재활운동’을 중심으로 치료한다. 전정재활운동은 균형을 담당하는 시각·체감각· 전정기관 신호를 우리 뇌가 올바르게 해석하도록 훈련하는 것으로, 크게 ‘적응훈련’과 ‘대치훈련’으로 이루어진다.
녹색병원 신경과 김진옥 과장은 “극심한 어지럼증과 구토로 힘들어하면 진정제와 같은 약물을 투여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정 기능 회복을 늦추고 만성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어 초기에만 권장한다”며 “가능한 전정재활운동을 병행해 전정 기능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 고령자라면 전정재활운동 시 균형을 잡지 못해 낙상 사고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전정재활운동은 눈과 고개를 돌리는 가벼운 동작부터 시작해 점차 강도를 높인다. 적응훈련은 △머리를 고정한 채 눈으로 물체 움직임을 따라가기 △물체 움직임을 눈과 고개도 함께 따라가기 △머리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바라보기, 대치훈련은 △제자리 걷기 △벽 짚고 걷기 △한 발로 서기 등이 있다.
더불어 어지럼증은 한 번 재발하면 자주 반복될 수 있으므로 꾸준한 생활 습관 관리가 중요하다. 지나친 과로와 스트레스는 피하고 혈액순환 증진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염분이 과다하거나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은 음식은 피하며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