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한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해 제약바이오업계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포기 선언”이라고 규정하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치러진 제약바이오 비상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은 정책 비판을 넘어 사실상 국가 정책의 방향 자체를 되묻는 경고였다. 업계가 이처럼 절박한 언어를 동원해 정부 정책의 유예와 철회를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반증이다.이번 개편안은 재정 절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전면적 약가 압박 정책이다. 제네릭 약가를 사실상 25% 이상 인하하고, 신규 등재 약가 인하와 주기적 가격 조정을 결합함으로써 국산 전문의약품 전반을 압박하는 구조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연간 최대 3조6천억 원의 매출 감소, 산업 전반의 수익성 붕괴, 그리고 회복 불가능한 침체다.
문제는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을 여전히 ‘비용 항목’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감염병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는 의약품 산업이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보건안보 인프라임을 똑똑히 경험했다. 그런 산업을 숫자 맞추기용 재정 절감 대상으로 취급하는 정책 시각은 위험할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국내 상위 100대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에 불과하다. 이미 산업은 수익성의 한계선에 도달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약가 인하를 강행하는 것은 ‘조정’이 아니라 ‘붕괴를 향한 밀어붙이기’다.
제약바이오산업의 생명선은 연구개발(R&D)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매출의 12~13%를 R&D에 재투자하며 버텨왔다. 그 결과 국산 신약 41개, 파이프라인 3,200여 개, 연간 기술수출 20조 원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약가 인하는 이 선순환 구조를 단번에 끊어낸다. 기업 수익이 1% 감소하면 R&D는 1.5%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정부가 내세운 ‘제약바이오 5대 강국’이라는 목표는, 이번 개편안 앞에서 공허한 구호로 전락하고 있다. 말로는 육성을 외치고, 정책으로는 숨통을 조이는 모순이 반복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 건강이다. 국산 제네릭 의약품은 초고령 사회에서 만성질환 환자를 지탱하는 최후의 안전망이다. 그러나 채산성이 무너지면 기업은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미 최근 6년간 147건의 의약품 공급 중단이 발생했고, 그 상당수가 수익성 부족이 원인이었다.
일본은 약가 인하 정책의 결과로 4천 개가 넘는 제네릭 품목이 공급 부족 또는 중단 사태를 겪었다. 완제의약품 자급률이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이 같은 길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약가 인하는 곧 의약품 공급망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
제약산업은 대표적인 고용 창출 산업이다. 그러나 약가를 깎으면 가장 먼저 줄어드는 것은 사람이다. 최대 25% 약가 인하 시 약 1만5천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연구·생산·품질 분야의 전문 인력이 현장에서 밀려나고, 지방에 분산된 생산시설은 지역 경제 침체의 도화선이 된다. 이것이 과연 정부가 말하는 ‘미래 산업 육성’의 모습인가.
시장연동형 실거래가제는 이미 한 차례 실패했다. 초저가 낙찰, 과도한 할인 경쟁, 유통 질서 붕괴, 대형 병원 쏠림 현상만 남긴 채 폐지된 제도다. 그럼에도 이를 다시 꺼내든 것은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부작용이 산업과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점이다. 정책이 불법과 왜곡을 유도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약가제도 개편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평가와 충분한 논의의 문제다. 1999년 이후 10차례가 넘는 약가 인하가 국민 건강과 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부는 단 한 번이라도 종합적으로 평가한 적이 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일방적 강행이 아니라 시행 유예다. 그리고 산업계와 함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약가 정책 결정 과정에 산업계가 제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식 거버넌스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약가 인하는 가장 쉬운 선택이다. 그러나 쉬운 선택의 대가는 언제나 가장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이 개편안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머지않아 국민 건강과 제약바이오산업 붕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