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지금,풍전등화의 위기상황이다"
최근 만난 원로 의료인의 진단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는 의료계 상황과 관련 자세한 진단을 청하자 "예전에는 원로들이 '훈수'아닌 조언을 하면 최소한 들은척은 했는데 요즘은 이런 전통도 사라졌다"며 손사례를 쳤다.
종합해 보면 노환규회장 탄핵 이후에도 '노전회장 때리기는 여전하고' 사실상 구심점이 없이 허둥되는 상황만 연출하고 있다는 평가다..
노환규전회장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만 사실확인 없이 난무,아직도 노전회장의 보이지 않은 힘이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가운데 노전회장과 함께 탄핵된 대한의사협회 방상혁기회이사가 28일 장문의 글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 처럼 심변잡기가 담긴 이야기'쯤으로 알고 그냥 무시, 휴지통으로 보내려 했는데 한번에 삭제가 되지 않아 긴글을 아무생각 없이 읽었다.
방전이사의 글중 일부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회원들의 알권리 차원에서 보도키로 했다. 가능한 원문(아래 방전이사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 참조) 을 살려 출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으로 일부 내용만 삭제하고 노전회장과 관련한 내용은 그대로 실었다.
방전이사는 '의료투쟁을 되돌아보며'라는 제목으로, 부제는 '노환규 전 회장에 대한 악의적 폄하가 멈추길 바라면서'를 달았다. 긴문장을 감정을 절제해 써 내려간 것으로 보여,다시한번 방전이사의 냉정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석에서 만난 정부 고위관료가 '노환규전회장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후일담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 글은, '최선을 다해 의료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노전회장에 대한 악의적 폄하는 중단되어야'한다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전이사는 일부에서 회자되고 있는 노전회장과 관련된 '회원투표는 믿을 수없다' '거짓투쟁을 했으며 노환규가 회원들의 투쟁열기를 꺼트렸다.' '회원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개인의 이익과 자리를 위해 일했다.'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며 회원들의 이해를 구했다.
비난을 감수하며 '노전회장 구하기?'에 직접 나선 동기와 관련 방전이사는 "방상혁이 노환규에 의해 이용만 당하고 버려졌다는 주장들이 (당사자는 저는 오히려 의료계를 위해 혼신을 바쳐 일한 노환규에 대해 미안해하고 감사하건만..) 탄핵을 주도했던 기존 의사회와 평의사회뿐 아니라 심지어 전의총과 의원협회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나오고 있느 상황에서 더 이상 침묵할 수없었다"고 밝혔다.
방전이사는 끝으로 "올바른 의료에 대한 열정 속에 이 한 몸 어찌되건 상관없다 생각하며 일했는데.. 불신임 이후 분노와 우울, 절망감속에 쟂빛 시간을 보냈다."며 "아직도 때때로 탄식에 젖어 들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의료에 행복한 날이 올 거라 믿으며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서겠다"고 다짐,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_의료투쟁을 되돌아보며(노환규 전 회장에 대한 악의적 폄하가 멈추길 바라면서)
1. 회원투표결과는 믿을 수 없다. 2. 거짓투쟁을 했으며 노환규가 회원들의 투쟁열기를 꺼트렸다. 첫째, 노회장이 진정 투쟁의지가 없었다면 1차 의정협의안을 받아들이고 파업을 강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비대위원들과 시도회장들, 그리고 대의원회는 1차의정협의를 수용하고 파업 없이 마무리되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노회장은 아무런 구체적 약속과 기약이 없는 1차 의정협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고 투쟁을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회원투표 결과 회원들은 1차 의정협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에 3월10일 하루 파업을 거쳐 2차 의정협의안이 도출될 수 있었습니다. (개원가의 낮은 참여는 정부를 압박할 수 없었으나, 전공의 선생님들의 높은 파업 동참은 크나큰 힘이 되었습니다. - 당시 송명제 전공의 위원장의 헌신은 의료역사에서 잊혀져선 안될 것입니다.) 둘째, 2차 의정협의에 직접 참여하여 협상을 진행했던 전공의 비대위원들은 협상의 결과에 크게 만족해 했습니다. 독립수련평가기구의 설립과 의협과 전공의협의회와 합의하지 않고는 정부가 PA합법화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등 전공의들의 숙원사업들을 서면으로 약속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24일 총파업으로 불과 다섯명의 투쟁위원회 위원들이 구속되면 이후 투쟁을 이끌 인물이 없었습니다. 말로는 투쟁을 떠들던 이들이 막상 대정부투쟁이 시작되자 모두들 투쟁의 일선에서 사라졌습니다. 정부는 투쟁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구속요건을 만들어놓고 3월 24일부터 일주일간 투쟁이 시작되면 곧바로 이들을 구속격리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노회장을 포함한 투쟁위원들이 구속된 상태에서 과연 누가 내부에서 파업을 이끌 것인가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24일부터의 파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면, 파업기한동안 일시적으로 도피해, 외부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편 항상 투쟁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노회장은 2차의정협의안대로 이행이 되지 않으면, 그때 명분을 가지고 투쟁을 다시 이어가기위해, “협의결과를 수용하고 24일 총파업 투쟁을 안한다” 가 아닌 ”협의결과를 수용하고 24일 총파업 투쟁을 유보한다.“로 투표내용을 명시하였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투쟁열기가 고조되고 있었지만 내부의 실상황은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투쟁을 반대하고 회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노환규회장 등 구속을 각오하고 투쟁을 지속하려는 이들이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일주일간의 파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에 대한 저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성공적인 파업속에 성과를 얻기 힘들고, 투쟁에 참여한 회원들에게만 피해가 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2차 의정협의안의 성과를 회원들에게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회원들은 2차 의정협의안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3. 회원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4. 개인의 이익과 자리를 위해 일했다. 국회의원에 대한 욕심 속에 여의도의 러브콜을 받기위해 물불을 안 가렸다고 비난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금배지를 위했다면 그는 새누리든 새민련이든 한쪽 당에 기대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좌파나 우파가 아닌 의파가 되어야 한다며 당과 상관없이 올바른 의료를 위해 상황에 따라 실리를 취할 수 있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 저지투쟁 때에 의협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투쟁지침을 모두 구두로 내리고 증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환규 전회장은 그때와 다르게 일체의 투쟁지침을 모두 문서로 남겼습니다. 본인이 책임질 것이니 지침대로 따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그 지침을 따른 리더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문서화된 지침조차 따르지 않았던 리더들이 뒤늦게 회장이 투쟁을 주저했다며 탄핵하고 나섰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도 통탄스러운 의료계의 자화상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가 되면 자연히 대한의사협회 회원이 됩니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변호사협회와 달리 회원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이런 현실이기에 의사협회장의 스탠스와 더불어, 실질적으로 회원을 움직이는 역할은 지역에 기반을 둔 시군구 의사회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도의사회는 투쟁을 생각하며 조직된 것이 아니기에, 대다수는 개인 희생에 대한 감내 속에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개적으로 투쟁무용론을 말하는 대의원 의장, 투쟁불가를 외치는 시도회장들이 의료계의 리더로 있는 것이 지금의 의사회 현실입니다. 최선의 진료를 가로막고 의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지금의 의료 환경, 의료의 왜곡을 양산하는 저수가, 저부담, 저보장 체제로는 의료전문가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국민건강을 제대로 지키기 힘듦을 대한민국 의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정부나 정치권이 알아서 해결해 주진 않습니다. 올바른 의료는 행복한 진료속에 나옵니다. 의료전문가 단체로서 국민을 위한 올바른 의료를 만드는데 의협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려면 문제의 실상을 국민에게 잘 홍보해야 함은 물론이고, 언제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의협회장은 물론이고, 지역의사회장부터 투쟁속에 감옥에 갈 각오가 없으면 안됩니다. 대의원을 포함한 의료계의 모든 리더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 의료와 의료계를 위해, 제발 투옥될 각오가 없다면 아예 출마조차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