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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위대함은 존엄한 죽음으로 완성된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박중철 교수,호스피스완화의료 단상 담담히 소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부속병원 이식전문 외과의사인 폴린 첸은 어느 날 의과대학 동기인 에리카의 전화를 받는다. 에리카는 폴린에게 하소연했다. “그 의사는 딱 한 번 죽음에 대해 우리와 의논했어. 그 다음에는 아빠에게 어떤 처치를 할지에 대한 이야기뿐이었지... 우리는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데 왜 이렇게 서툴까?” 그의 아버지는 간암 말기환자였는데 죽음에 임박해서야 담당의사는 그를 불러 그 사실을 전했다고 했다.

폴린 첸의 ‘나도 이별이 서툴다’라는 책의 일부다. 에리카도, 그의 아버지를 돌보는 담당의사도, 폴린도 모두 의사다. 의사의 사명은 고귀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불행히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의학은 어느 순간 편히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지워버리고 있다. 일말의 가능성에도 최선을 다하겠노라 약속하던 현대의학이 결국 죽음을 막지 못하고 두 손을 드는 순간 환자와 보호자는 우주에 내던져지는 듯한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최선은 곧 선행’이라는 의사들의 오랜 믿음을 깨뜨렸다. 가고 멈춰 섬을 분별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달려가는 의학은 인간의 존엄한 마무리를 망가뜨려 오히려 해로움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 할머니 사건 이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로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서둘러 제정됐다. 늙지 않고 장수하려던 ‘웰빙’ 열풍은 이제 의미 없는 고통을 겪지 않으면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으로 대체됐다. 의료계에도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질병과 싸우기 위한 경쟁에만 몰두하던 병원들이 하나둘씩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의과대학도 생명만을 절대시하며 달려가는 경주마 같은 의사를 길러내던 기존의 교육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을 모두 견줘볼 수 있는 인간적인 의학교육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란 한 마디로 인간이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의료다. 인간은 모두 고유한 자기 가치를 지니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간다. 때문에 잠시 생명을 연장하더라도 그 가치의 훼손이 심각하다면 그것은 본인과 가족들 모두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김 할머니 사건에서처럼 바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말기환자에게 기계장치와 약물을 통해 단지 몇 시간 또는 수일간의 기계적인 삶을 연장하는 것은 생명존중이 아니라 고통을 증가시키고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것일 수 있다. 말기환자의 여생 동안 고통을 최대한 제어하면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소중한 의료의 역할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존엄한 죽음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기에 단순히 의학의 힘만으로는 그 역할을 완성할 수 없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신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역사가 담긴 사회적이고, 인격적이며, 영적인 존재기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인적인 돌봄이 요구된다. 호스피스완화의료에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영양사, 종교인, 예술치료사, 자원봉사자 등이 참여하는 이유다.

내게는 잊지 못할 환자가 있다. 25살에 자궁경부암이 온몸으로 퍼진 여성환자였다. 그는 미혼모 상태에서 임신을 했고 산부인과에 갔다가 말기암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한 후 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갔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남자친구였던 아이 아빠는 연락이 끊겼고 이혼한 친부모도 찾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의 항암치료가 불가능하자 극심한 우울증 상태에서 모든 사람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종일 침대에서 울며 죽음을 기다렸다.

우리는 모여서 어떻게 그를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고 일찍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편안하게 안길 수 있는 엄마라는 울타리란 결론을 내렸다. 그 역할은 그가 입원한 병실의 간병도우미가 맡았다. 그의 사정이 딱하다고 마냥 끌려다니지 않고 심한 응석과 투정에는 야단도 치고 의젓한 모습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마치 친엄마처럼 그를 대했다. 어느샌가 그는 마음을 열고 간병도우미를 엄마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시작했다. 심리적 변화와 함께 통증 때문에 투여되던 진통제는 10분의 1로 줄었다.

우리는 그가 남은 삶을 침대에 누워 보내지 않고 매일 무언가 할 일을 찾길 바랐다. 다행히 그는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는 법을 배워 사진작가처럼 매일 병원의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인화해 가져다주면 그 사진을 다른 환자들과 의료인들에게 선물했다. 그는 호스피스완화의료팀과 새롭게 가족을 이루고 아마추어 사진작가라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죽음의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고 평온하게 임종을 맞았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로 전원 온 지 42일 만이었다.

물론 모든 환자가 평화로운 마무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통해 결정된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고 의연하게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환자를 볼 때마다 인간의 위대함이 단지 생명의 가치에만 있지 않음을 깨달으며 숙연해진다. 삶의 위대함은 존엄한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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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류에 다시 중독되지 않도록 사회재활 지원 범위 확대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세부사항을 규정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대통령령) 개정(안)을 5월 21일 입법예고하고 6월 30일까지 의견을 듣는다. 개정 법률에 따라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사회재활 지원 범위가 ‘사회복귀’에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유지·보호’까지 확대(’25.10.2. 시행)되고, 의료용 마약류 처방 시 투약내역 확인 예외 사유로서 ‘긴급한 사유’, ‘암환자의 통증 완화’ 이외에 ‘이에 준하는 사유’가 추가(’25.9.19. 시행)된다. 이에 따른 시행령 개정안에서는 ❶마약류 중독자의 사회재활을 위해 확대되는 세부 지원 범위, ❷의료용 마약류 처방시 투약내역 확인 예외 추가 사유, ❸마약류중독관리자시스템 구축·운영에 필요한 세부사항 등을 규정했다. ❶ 전문인력 양성·재활센터 운영 등 기존 사회재활사업에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유지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는 한편, 중독자에 대한 직업훈련ㆍ취업지원 연계, 민간 상담기관 지원, 관계 기관 및 단체 간 사업 연계 등까지 사회재활사업을 대폭 확대한다. ❷ 의료용 마약류 처방 시 투약내역을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하지만, 법에서 정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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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료원, 후원캠페인 ‘The Great Future 위대한 미래를 여는 밤’ 개최 연세의료원은 20일 저녁 6시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진료·교육·연구 발전을 위한 모금캠페인 중간보고회 및 미래발전위원 추가 위촉식 ‘The Great Future 위대한 미래를 여는 밤’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그간 연세의료원이 펼쳐온 모금캠페인 성과를 공유하고 기부 활성화 등을 논의하는 자리로 허동수 연세대 이사장, 이경률 연세대 총동문회장, 금기창 의료원장, 전영한 하님 회장을 비롯해 미래발전위원 등 110여명이 참석했다. 허동수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연세의료원은 모든 생명이 존엄하게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욱 담대하고 체계적인 여정을 이어 가고자 한다”며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진 미래발전위원 위촉식에서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호반그룹 창업주)과 이재범 연세대 의대 총동문회장이 공동 미래발전위원장에 위촉됐다. 김상열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다 대한민국을 도약시킬 수 있는 분야로 바이오헬스의 가능성을 봤다”며 “그 여정의 자선적 파트너로 선하고 뿌리 깊은 사명감과 그 사명을 실현할 수 있는 연세의료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금기창 의료원장은 행사에서 독지가 세브란스 씨의 기부로 시작해 미국 록펠러 재단이 설립한 차이나메디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