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가의 회계연도를 매년 1월 1일에 시작하여 12월 31일에 종료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사업은 당해연도 사업계획에 따라 당해 회계연도 집행이 원칙이다. 하지만 예외가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는 국가사업이 있다. 바로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이다.
국가재정법 제2조(회계연도) 국가의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에 시작하여 12월 31일에 종료한다. 제3조(회계연도 독립의 원칙) 각 회계연도의 경비는 그 연도의 세입 또는 수입으로 충당하여야 한다. |
“2012년 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미국에서 해외연수프로그램이 있는데, 11년 예산으로 미리 일부를 집행하겠습니다(국가임상시험사업단)” 일반적인 다른 국가사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의원(전북 전주시 덕진)이 보건복지부의 R&D 전문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복지부 내 모든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의 사업단과제가 당해연도 배정된 예산을 다음해에까지 넘겨 집행하는, ‘회계연도와 실제 집행연도의 불일치’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표]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 사업단별 연구기간
사업단명 |
총 연구기간 |
연차별 연구기간 * |
문제점 |
선도형 세포치료 연구사업단 |
2006.12~2016.11 |
12.1 ~ 익년 11.30. |
- 사업단은 모두 다년차 연구. 연차별 연구기간을 1월1일로 설정하지 않아 모든 사업단의 예산 실제집행이 다음해에까지 걸쳐 집행 - 사업단별로 수십개의 세부과제가 있어, 세부과제는 이러한 현상이 더더욱 심화 |
국가임상시험사업단(Ko-NECT) |
2007.11~2014.03 |
4.1 ~ 익년 3.31. | |
글로벌코스메틱연구개발사업단(NCR) |
2010.12~2018.10 |
11.1 ~ 익년 10.31 | |
선도형 암 연구사업단 |
2006.12~2016.11 |
12.1 ~ 익년 11.30. | |
선도형면역질환융합연구사업단 |
2009.12~2014.11 |
12.1 ~ 익년 11.30. | |
신종인플루엔자 범 부처 사업단 |
2010.11~2016.10 |
12.1 ~ 익년 11.30. | |
선도형 난치암연구사업단 |
2009.12~2014.11 |
12.1 ~ 익년 11.30. | |
선도형 뇌심혈관질환 융합연구사업단 |
2008.12~2013.11 |
12.1 ~ 익년 11.30. | |
선도형 당뇨병 및 대사성질환 신약개발 연구사업단 |
2011.09~2016.03 |
4.1 ~ 익년 3.31. | |
차세대 맞춤의료 유전체 사업단 |
2011.04~2019.03 |
4.1 ~ 익년 3.31. | |
시스템통합적 항암신약개발 사업단 |
2011.06~2016.03 |
4.1 ~ 익년 3.31. | |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 |
2010.04~2015.03 |
4.1 ~ 익년 3.31. | |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 |
2011.09~2020.09 |
3.1 ~ 익년 2.28 | |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
2004.05~2013.03 |
4.1 ~ 익년 3.31. |
* 보건의료연구개발사업은 다년차 과제라도 단년도 협약을 시행하고 있음.
** 자료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출자료 재구성
특히 일부 사업단은 당해연도 예산을 모조리 다음해에 집행하거나, 당초 계획하지 않은 사업을 부랴부랴 끼워넣어 당해연도 연구기간 종료 직전에 시행하는 등 ‘국가재정법’상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에 저촉되고, 예산의 효율적 편성과 집행을 해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되었다.
○ (글로벌코스메틱연구개발사업단) 2010년도에 예산 배정된 52개 세부연구과제들의 연구기간이 모두 2011년 2월부터 개시. 이로인해 2011년도 예산 또한 회계연도를 넘겨 실제로는 대부분 2012년 현재 집행 중에 있음 ○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 2011년에 배정된 예산으로 2012년 1월에 4개 세부과제에 대한 연구를 개시 ○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 2011년도 연차계획에 포함되지도 않은 사업을 당해 연구기간(’11.04~’12.03) 종료 2개월 전인 12년 2월에 6개 세부과제 시행. 14개월간 수행하도록 설정되어 2011년도 예산으로 2013년까지 집행 ○ (국가임상시험사업단) 총 연구기간이 2012년 1월부터 2013년 1월로 설정되어 있는 세부과제의 연구비 중 일부가 2011년 예산으로 지원 |
자료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출자료 분석
과제공모나 기획 등으로 인해 통상 매년 1월에 사업을 바로 실시하는데 어려움이 있더라도, 연간 수십억에서 백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대단위 사업이 하루아침에 기획되어 시행되는 사업이 아닌만큼 첫해에만 연구기간을 연말로 보정하고, 다음해부터는 1월에 바로 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다면 국가재정법을 준수할 수 있다. 진흥원이 오랜기간 연구관리를 해 온 전문기관임을 감안한다면 의지와 노력으로 충분히 국가재정법을 준수할 수 있는 사항이다.
더구나 당초 연구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연구사업을 연구기간 종료 직전에 시행한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은 2011년도 연구만료기간을 불과 2개월 남겨놓은 시점에 ‘임상진료지침개발’이라는 사업을 무리하게 시행하였다. 결과적으로 2011년도 예산으로 2012년도에 걸쳐 2013년도까지 집행되는 사업을 시행하게 된 터다. 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사업단 운영위원회 회의록에 의하면, 이 사업의 시행여부를 놓고 사업단 운영위원회의 갑론을박이 있었으며 이는 사업단 전체협약이 지연되는 결과로 이어졌음이 드러났다.
특히 사업단장 등 운영위원회 대다수 위원이 사업단의 사업목적과 성격이 다른 이유를 들어 ‘임상진료지침개발’ 사업의 시행에 우려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위원 중 한명인 복지부 과장의 강력한 요청으로 사업이 추가되면서 전체 연구사업 협약 자체가 늦어진 사례는 ‘R&D 재원이 곧 쌈짓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기획재정부 및 국회의 심의를 받아 시행하는 국가사업은 사업의 성격과 시행시기를 고려, 엄밀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예산을 신청해 국회에서 확정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여야 한다. 일반사업의 경우 예산의 이월집행 등은 극히 제한되거나 불가피한 사유에서나 승인된다. 그러나 거의 모든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의 회계연도와 집행연도가 불일치하거나 당초 계획되지 않은 사업이 본래 연구성격에도 부합되지 않는데도 특정인의 입김으로 시행될 수 있는 이러한 행태는, R&D사업 전반에 있어 정부가 국회에 보고하는 예산안이나 사업개요 자체가 정확한지 의심스럽다.
이에 김성주 의원은 “진흥원이 관리하는 사업단 과제는, 한해에 끝나지 않고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는 다년차 사업이고, 1년에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백억 이상의 단위로 집행되는 대단위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형 R&D의 관리는 진흥원이 전문기관으로서의 역량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복지부가 위탁한 것이고, 특히 사업단과제와 같은 대형연구과제는 소규모 연구과제와 달리 차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국가연구사업단을 설치한 당초 의도에 부합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복지부나 진흥원, 주관연구기관의 편의적 판단에 따라 사업단이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보건의료기술개발사업 관리규정’상의 사업단의 의사결정과 운영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