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의 존재감이 달라지고 있다. ‘아픈 사람’으로 수동적으로 조용히 치료를 받는 존재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의견을 개진하는 ‘똑똑한’ 환자로 변모하고 있는 것. 특히 의료진의 의견에 따르던 의존적인 존재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의료소비자’ 단체로 그 영향력과 위치를 강화하고 있다.
환자들이 가장 중요한 ‘고객’인 제약사 또한 이런 추세를 반영, 환자의 스토리에 주목하고 있다. 환자들의 목소리와 스토리를 활용한 캠페인을 진행해 환자와 소통을 강화하는 한편, 차별화된 기업 이미지를 구축을 꾀하고 있는 것. 기존에 이미 다양한 환자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글로벌 제약사에서 시작해 이제는 국내에도 점점 더 많은 제약사들이 치료제 개발뿐 아니라 환자와의, 그리고 환자간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형식의 환자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환자 본인의 경험과 스토리로 질환 극복 메세지 전달
“오랜 시간을 왜냐고 물으며 화가 난 채로 지냈습니다……(중략)……오늘, 나는 진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저귀를 갈았고, 작은 셔츠에 단추를 잠갔으며, 차문을 열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2살짜리와 체육관에서 뒹굴었습니다. 챔피언은 나입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닙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인 니콜 달튼(Nicole Dalton)씨가 영상을 통해 소개하는 자신의 질환 극복 이야기다. (사진: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닌, 내가 챔피언입니다’라는 제목의 환자 비디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ristol-Myers Squibb, 이하 ‘BMS’)는 암, 류마티스 관절염, 당뇨 등 질환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의 스토리를 공유하는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Together we can prevail)’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본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캠페인 동영상 시리즈는 배경음악이나 효과 없이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스토리를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촬영됐다. 암, 당뇨, 심혈관 질환, HIV/AIDS 등 다양한 질환을 앓는 일반인들이 병을 이겨내겠다는 강한 의지와 용기, 긍정적인 생각을 전달해 각 이야기마다 잔잔한 감동을 준다. 생생한 경험담은 같은 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이 캠페인은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우수한 예로 국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터 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siness Communicators)가 2007년 선정한 골드 퀼 수상 사례(Gold Quill Award-Winning Case Studies)에 꼽히기도 했다. BMS는 ‘당신의 의지와 우리의 치료제’ 라는 주요 메시지로 환자를 우선으로 하는 제약사라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고 평가 받는다.
환자가 아닌 ‘동료 상담가’들이 모여 HIV인식 개선
비디오라는 강력한 비쥬얼 마케팅 툴을 통해 환자의 스토리를 전하는 또 다른 제약사는 존슨&존슨(Johnson & Johnson) 기업의 미국 제약사 얀센(Janssen Pharmaceuticals)이다.
HIV 치료제를 만들고 있는 얀센은 지난 2011년 에이즈에 걸린 환자들의 이야기를 촬영해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 환자들과 공유했다. ‘환자’라는 단어 대신 ‘동료 상담가(Peer Educator)’라고 지칭되는 에이즈환자들은 흑백의 영상을 통해 처음 진단받은 시점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있는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SNS채널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공감 혹은 응원하는 댓글을 통해 대화를 생성, 계속 진화해가는 ‘살아있는’ 캠페인이 됐다. 또 그 동안 사회적 터부로 인식됐던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개선에도 한 몫 했다.
국내의 경우 한국로슈가 진행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힐링갤러리’가 20년 간의 유방암 투병시간을 예술로 극복한 박보순 작가와 18명의 유방암 환우들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각 분야 여성 명사들이 초청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정서적 치유를 제공해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회공헌활동이라는 평을 받는다.
한국BMS제약 배명수 전무는 “오늘날의 환자들은 이전과 달리 적극적인 소비주체로, 영향력 있는 단체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약사들이 이러한 환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제약사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이자 이해관계자인 환자의 적극적인 소통을 지향하는 캠페인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